[책 ‘갱부’를 읽고]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것

등록일 2026년10월07일 16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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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갱도의 맨 끝이자 더는 나아갈 곳이 없는 막바지를 뜻하는 ‘막장’은 주로 막다른 길에 다다른 밑바닥 인생을 비유할 때 쓰인다. 소설 ‘갱부’는 도쿄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청년이 삶의 방을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채 무작정 집을 나와 광산의 막장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던 주인공 ‘나’는 어느 날 복잡한 연애 문제로 타인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자신의 평판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기자 ‘나’는 도망치듯 광산으로 향한다. 이후 ‘나’는 어둡고 축축한 광산 속에서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부들과 마주한다. 작가는 문명이 발달한 밝은 도시와 어두운 갱도 안을 대조시켜 이상적인 모범생이었던 청년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갱부’는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사회나 타인이 제시하는 지침을 벗어나지 않는 모범생처럼 보이려 한다. 모범생의 삶은 표준화되고 정형화돼 있어 때로는 진정한 내가 아닌 그저 사회가 원하는 모습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갱부’의 ‘나’처럼 모범생이라는 정체성은 뜻밖의 사소한 사건 하나에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탑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나의 본모습을 직시하는 일일 것이다.

 

모범생이라는 가면이 벗겨진다 하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나’가 도망친 광산의 막장은 도련님이자 모범생으로서의 신분과 지위가 통하지 않는 최악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는 모범생인 자신을 내려놓게 된다. 때때로 우리 역시 모범생에서 벗어났다는 죄책감이나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 막장이라는 공간이 무너진 나 자신을 허물고 새로운 나를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됐듯 모범생의 틀을 깨는 경험은 진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야기는 ‘나’가 갱도의 막장을 나와 광산 사무소에서 장부를 정리하는 서기 일을 맡게 되며 마무리된다. ‘갱부’는 ‘나’가 극적인 변화를 이루거나 거창한 삶의 깨달음을 얻어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식의 작가 편의주의적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막장에서 빠져나온 ‘나’가 마주한 것은 여전히 지저분하고 열악한 환경과 가난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모범생이라는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신을 찾더라도 곧바로 극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깨달음 자체가 당장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기는 어렵다. 단지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할 뿐이다. ‘갱부’는 정해진 결말 대신 ‘어떻게 진정한 자신을 찾고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사회가 규정한 ‘나’가 아닌 진정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칼럼을 마친다.

 

 

강승우 기자 13seungwoo@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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