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보다 두려운 것은 패배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한두 번의 실패는 사람을 분발하게 만들지만, 실패가 오래 이어지면 어느 순간 실패를 자신의 형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기대를 줄이고, 목표를 낮추며, 결국에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까지 내려놓는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전체 교수회의에서는 ‘경쟁대학’이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어느 대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보다 앞선 대학은 왜 앞서 있는지, 그들을 따라잡거나 넘어설 방법은 무엇인지 등이 진지하게 논의됐었다. 때로는 지나친 비교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말속에는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전제가 있었다. 우리도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요즘에는 ‘경쟁대학’이라는 표현을 듣기가 쉽지 않다. 담론의 유행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대학은 여러 경쟁 지표에서 후퇴했다. 물론 ‘학령인구 감소’, ‘산업구조 재편’, ‘이공계 선호 현상’처럼 개별 대학의 힘만으로는 거스르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후퇴를 시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고, 새로운 기회를 앞에 두고 과감한 결정을 미뤘던 때도 있었다.
대학의 순위나 성과 지표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하향의 경험이 우리 안의 기대 수준까지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정도면 됐어’, ‘우리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지’, ‘다른 대학도 별수 없다’라는 말이 하나둘씩 쌓이면 모든 것이 현실적인 판단처럼 느껴진다. 이런 판단이 조직 전체의 습관이 되는 순간,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는 어느새 현실을 고착시키는 언어가 된다.
물론 우리대학의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들어 연구력 강화를 위한 여러 정책이 추진되었고, 첨단 학과 신설, 교육과정 개편, 신입생 모집 등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학교 집행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의 경쟁력은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교수에게는 자신의 연구와 교육을 조금 더 높은 기준에 올려놓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학생에게는 자신의 가능성을 대학의 현재 위치와 동일시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와 겨뤄보려는 정신이 필요하다. 직원에게는 익숙한 업무를 반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구도 혼자 대학 전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대학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나 정책이 아니라 ‘단순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이겨보겠다는 마음, 다시 앞서가겠다는 마음 말이다. 여기서 ‘이긴다’라는 것은 대학 순위 몇 계단을 올리는 일이 아니다. 더 좋은 연구를 하고, 더 좋은 수업을 구상하고, 더 유능한 행정을 구현하고, 더 큰 꿈을 품은 학생을 길러내는 일이다. 단, 경쟁의 방향은 남을 흉내 내는 데 있지 않다. 우리보다 잘하는 곳을 바라보고, 무엇이 다른지 묻고, 배울 것은 배우며, 마침내 우리만의 강점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경쟁은 열등감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높이는 행위여야 한다.
대학의 반등은 어느 날 발표되는 하나의 정책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강의실에서, 연구실에서, 사무실에서, 열람실에서 각자가 자신의 기준을 조금씩 끌어올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우리대학의 위치를 바꾸는 싸움은 결국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벌어진다. 우리대학은 다시 올라설 수 있는가? 그 답은 거창한 전략이 아닌, 우리 안에 ‘다시, 이겨보겠다!’라는 마음이 남아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상빈(영어통번역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