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가족 개념 확대의 효시

등록일 2021년05월28일 15시3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지난달 27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하 4차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번 계획은 법적 가족 개념을 확대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이 사회제도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가족 논의에서 소외됐던 이들과 4차 계획의 △내용△한계△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보자.

◆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가족들
현행법상 △동거△사실혼△위탁가정 등은 법적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가족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왔다. 민법 제79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와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배우자의 직계혈족△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가족 정책의 토대가 되는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한정된 범주는 다양한 이들의 삶에 의도치 않은 악영향을 미쳤다. 먼저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 어려움을 들 수 있다. 2015년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가 어렵단 사실이 공론화되며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57조 제2항(이하 사랑이법)이 신설됐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는‘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친모가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후 사랑이법이 적용되며 친자임이 확인될 경우 법원에서 한 번의 확인과정을 거친 후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과정이 간소화됐지만 미혼부 출생신고 과정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사랑이법은‘ 친모의 △성명△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모두 알 수 없는 경우엔 친부가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아이 출산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2016년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친모의 인적사항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알고 있으면 사랑이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번 해 1월 친모가 사실혼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 사랑이법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친부는 교육청과 동사무소를 전전하며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려 했지만 사랑이법의 조건에 발목 잡혔다. 친모의 인적사항 일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8살이었던 피해 아동의 출생신고가 이뤄져 초등학교에 다녔다면 교육 당국이 학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을 테지만 피해 아동은 취학통지서조차 받지 못했다. 기존 가족 개념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 적용에도 차이를 가져온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을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정신적△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가정구성원 범주에 들어가는 대상은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등이다. 이때 사실혼 관계가 성립하려면 혼인 의사와 혼인 생활의 실체가 있어야 하며 △가족들의 동거 사실 인식△동거 기간△양가 가족 행사 참여 여부 등에의해 비혼 동거와 구분된다. 권민경 변호사는“ 부모님께 배우자를 소개하지 않았거나 서로의 가족들과 유대가 없는 경우 사실혼 관계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률혼과 사실혼 밖에서 폭력이 일어나면 가정폭력이 아닌 폭행으로 분류된다. 가정폭력과 폭행은 사후 조치에서 차이가 있다. 가정폭력피해자의 경우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라 △법률 자문△보호시설 입소△상담 등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교육△생계△현물 등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비혼 동거 관계에서의 폭력에 대한 처벌과 조치 방법은 현행법상 규정돼 있지 않다. 이 외에도 기존 가족 개념으로 인한 차별은 △연금△의료△주거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현행 가족 정의에서 소외된 이들은 고용·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이 불가하고, 응급수술 시 수술동의서에 대신 서명할 수도 없다. 주택 공급 정책이 신혼부부 중심으로 돼 있어 비혼 동거 가정은 혜택받기 힘들단 지적도 있다.

◆ 가족의 포용성 넓히는 건강가정
4차 기본계획은 기존 가족 개념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으며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 조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여가부는‘ 모든 가족, 모든 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 구현’이란 비전 아래 모든 형태의 가족을 위한 △사회기반 구축△사회적 돌봄 체계 강화△사회환경 조성△안정적 생활여건 보장의 영역별 정책과제를 마련했다.4차 기본계획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의 형태와 구성 변화에 발맞춘 대응책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이하 정 장관)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혼인 여부, 가족 형태 등에 따라 아동의 보편적 권리가 제한되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관련 제도의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사랑이법 후속 조치△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도입 등을 계획 중이다. 이를 통해 배우자에 대한 정의 규정이 다양한 가족 내 폭력피해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수 있으며, 비혼부가 친모의 정보를 일부 알고 있는 경우와 친모의 비협조 시에도 법원을 통해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가족 특성을 고려한 자녀양육 여건을 조성해 아동 복지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단 기대가 모아진다. 한편 4차 기본계획에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은 사안은 부성 우선주의 개선이었다. 현행 민법 제 781조에선 일반적으로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어머니 성을 따르는걸 예외적인 경우로 설정했기에 비혼·한부모 가정 등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차별적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법을 개정해 혼인신고가 아닌 출생신고 때 부부가 아이의 성을 협의해 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4차 기본계획은 △가족 구성 방식 다양화△가족 다양성에 대한 높은 수용도△혼인 감소 및 만혼화현상 등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대응한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 장관은“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여건 보장을 위해 정책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 모든 가족을 포용하기 위해선
4차 기본계획을 통해 더 많은 형태의 가족이 법적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됐지만 성 소수자와 비혼 단독 출산은 가족 범주에서 제외됐단 비판이 제기됐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동성 부부는 여전히 법으로 인정받지 못해 △금융△복지△조세 제도 등에서 차별을 겪고 배우자의 입원이나 수술에도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 씨와 같은 자발적 비혼모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명시적으로 비혼자 대상 보조생식술을 금지하는 법령은 없으나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서 비혼모가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차원 정자은행이 없어 정자를 수급할 수 없는 등 현실적 제한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가족 정책은 다양성 인정을 최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랑스는 1999년 동거 인구 급증에 따라 시민연대협약인 팍(PACS)를 도입했다. 팍스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가족수당△사회보장급여△소득세 산정 등에서 혼인 가구와 같은 혜택을 주는 제도다. 팍스로 이어진 가구는 혼인 가구와 동일하게출산 및 사망 관련 휴가 보장과 유산 상속이 가능하다. 독일에서도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 비혼 동거 가족 혹은 동성 부부 등에게 △가족의 권리△부양 임무△채무 연대 책임 등을 부여했다. 한편 4차 기본계획은 향후 5년간 우리나라 가족관련 정책의 기본 틀로 작용할 뿐 실질적인 법 개정을 강제할 순 없다. 또한 기본계획 내용이 타 부처 소관 법률 개정과 맞물려 있어 다양한 가족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까진 시일이 걸린다. 더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상처받는 이들이 없도록 정부의 빠른 정책 도입이 필요한 시기다.


우경주 기자 02gjwoo@hufs.ac.kr

우경주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추천 1 비추천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기획 심층 국제 사회 학술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