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언론중재법)’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주도한 이번 개정안은 △기사 삭제 청구권△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정정 보도를 해당 보도와 같은 분량·크기로 보도△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한다.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단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가운데 김민정 우리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만나 언론중재법에 대한 논란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Q1. 이번 개정안이 논란이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법안들 중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항목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제17의 2)△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제17의 3)△정정 보도 시 형식 요건 강화(제15조)죠. 언론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므로 그에 대한 제한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돼야 해요. 또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은 명확하고 세밀하게 규정돼야 하죠.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런 점이 미흡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Q2. 이번 개정안은 가짜뉴스의 방지와 피해자의 인격권 보호를 취지로 발의됐습니다. 법안 적용 대상엔 기성 언론사만 포함됐는데요. 그렇다면 가짜뉴스가 잦은 빈도로 생성, 배포되는 △SNS△유튜브△1인 미디어는 어떻게 규제될 예정인가요?
언론중재법 적용 대상은 △방송사△신문사△인터넷 신문△통신사 등 기성 언론입니다. 이번 언론중재법엔 기성 언론 외에서 발생한 온라인상의 허위정보에 대한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어요. 민주당에선 이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 정보통신망법(이하 망법) 개정을 통해 온라인상의 허위정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지난 2월 윤영찬 의원이 발의한 망법 개정안이 바로 그 일례죠.
Q3.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서 고의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단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조항의 기준은 무엇이며, 불명확한 기준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언론 보도에 명백한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항은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 자료를 조합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정정·추후 보도가 있었지만 해당 기사를 별도의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로 규정됐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 모두 표현이 모호하고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문제가 됐죠. 가령 언론이 의혹을 연속해서 보도한다면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를 통해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에 해당돼 언론중재법에 저촉될 수 있어요. ‘정정 보도가 청구된 기사를 별도의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도 악용될 수 있죠. 언론 보도에서 부정부패로 지목된 이가 정정 보도 청구만 걸어두면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3-1.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서 입증책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입증책임이란 무엇이며,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나요?
입증책임의 원칙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무죄추정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는 무죄로 추정되고 검사는 피고가 유죄란 걸 입증해야 하죠.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있기 때문에 만약 검사가 재판에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피고의 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는 무죄가 돼요. 달리 말해 피고는 자신이 무죄라는 걸 직접 입증할 필요가 없으니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처럼 누가 입증책임을 지는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에요. 우리나라 민법의 대원칙에 따르면 형사법에선 검사가, 민사법에선 소송을 한 원고가 입증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원고 즉,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정안에 명시된 요건만 충족하면 언론사에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언론사가 이를 입증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입증책임의 전환이죠. 이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문제가 됩니다.
Q4. 우리나라 현행 법체계엔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따른 형사처벌 제도와 민사상 손해전보제도와 같은 언론 피해 구제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는데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이중처벌의 문제나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저촉되진 않나요?
이중처벌의 문제가 우려됩니다. 헌법의 과잉금지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이 헌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목적의 정당성△법익의 균형성△수단의 적합성△침해의 최소성 이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번 법안은 언론 보도로 인한 인격권 피해를 구제한다는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과연 이 법안을 통해 의도한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무엇보다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위배하기 때문에 과잉금지원칙 위반이 될 수 있어요.
Q5. 민주당은 비판 여론을 고려해 △고위공직자△대기업 간부△선출직 공무원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수정안을 새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정치 권력과 자본에 대한 언론의 감시 보도를 보장할 수 있나요?
여전히 정치 권력과 자본에 대한 언론의 감시 및 비판 보도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어요. 수정안에 포함된 공인의 범위가 좁게 규정됐기 때문이죠. 공인의 범위엔 대부분 선출된 공직자를 포함해 기관장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만이 해당됩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공직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죠. 심지어 이 범위는 법원에서 기존에 인정한 공인의 범위보다 좁아 문제가 되고 있어요.
Q6. 미국도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와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나요?
미국은 판례법 국가이고 명예훼손을 각 주에서 불법행위로 규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주가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미국 전역에서 일괄적으로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미국은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을 적시하는 것 또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아요. 또한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가 여섯 가지 사항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중 입증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라고 불리는 기준이에요. 현실적 악의는 거짓임을 알고도 보도한 경우(knowledge of falsity) 또는 진실 여부를 무시하고 무작정 보도한 경우(reckless disregard for the truth)로 정의됩니다. 공인은 전보적 손해배상*을 구하기 위해서도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하고 이를 소송에서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처럼 두 국가 간의 명예훼손 법리 체계가 확연히 다른 상황에서 미국도 허용하니 한국도 허용하자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Q7. 해외에선 우리나라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많은 세계 언론인과 단체가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세계 최대 기자 조직인 국제기자연맹도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다”며 법안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국제언론인협회는 비판 성명을 발표한 바 있죠. 지난달 20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이사회도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지난달 12일엔 세계신문협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어요.
Q8. 이번 개정안은 어떻게 보완돼야 할까요?
기사가 온라인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막는 조치인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과 정정 보도 시 형식 요건 강화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높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론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대신 법원에서 전보적 손해배상 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 개정안처럼 모호하고 기존 법리와 충돌하는 규정은 오히려 역효과만 낳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따라서 법안 전체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보적 손해배상 : 손해를 끼친 만큼만 배상을 하는 것
임세은 기자 02seeu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