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문화 가정에서의 정체성과 각 국가 내 공동체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해 왔다. 그녀는 속초와 프랑스 노르망디(France Normandie)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고 속초의 많은 모습 중에서도 춥고 매정한 겨울을 선택했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자전적인 성격을 띤다.
펜션(Pension)의 알바생인 ‘나’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떠나버린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이방인이란 의식을 갖고 항상 갈등하며 살아왔다. 어느 날 노르망디 출신 중년 남자 엘 케랑(Yan Kerrand)이 숙소에 머무른다. 그는 만화가로서 영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다가 속초를 방문한다. ‘나’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고향 출신인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자신의 남자친구에게서 진정한 애정을 느끼지 못한 ‘나’는 케랑과 함께 비무장지대나 설악산 국립공원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대화조차 하지 않은 채 풍경을 구경하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그에게로 향하고 있다. 둘이 돌아올 때면 펜션의 방 안에서 연필 소리가 격하게 들리곤 했다. 한 여자를 그린 후 곧 잉크로 뒤덮어 버리는 걸 반복할 때마다 ‘나’는 숨죽이고 보곤 했다. ‘나’는 직접 한 요리를 케랑이 먹어주길 바랐지만 그는 첫날 ‘나’가 칼을 쓰다 요리에 피가 스며드는 것을 보고 이후 ‘나’의 요리를 일절 거절했다. 그가 끝내 먹겠다고 말한 다음 날 케랑은 홀연히 펜션을 떠난다. 그가 묵던 방에는 화첩이 남겨져 있었는데 ‘나’가 어렸을 적 갈고리에 걸려 생긴 흉터가 그려져 있었다.
소설의 전체적인 서술은 차가운 속초의 배경을 세심하게 묘사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잔잔하게 그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 나라의 피를 공유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닮아 있다. 정서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나’와 물리적으로 떠도는 만화가 케랑이 잠시 머물다 헤어진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읽힌다.
소설 속엔 여러 비유와 암시가 등장한다. 비무장지대는 우리나라의 경계이자 두 ‘경계인’이 함께 방문하는 장소로서 작가의 내면적 갈등을 상징한다. 또한 ‘나’가 케랑에게 끌렸던 이유는 부재한 아버지의 존재를 그에게 투영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자신의 근원을 이해하고자 했지만 결국 케랑은 그녀가 찾던 해답이 될 수 없었다.
혼혈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이방인이 돼본 적이 있다. 말보다 침묵으로 교감하는 두 인물은 소속감 없이 떠도는 인간의 외로움과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다. ‘속초에서의 겨울’은 완벽히 속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속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하는 작품이다.
송주원 기자 11ju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