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8%로 1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7%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폭등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천연가스 수출 1위, 석유 수출 2위의 에너지 강국이다. 또한 △귀리△밀△보리 등 농산품 생산에 있어 세계 2~4위를 차지한다. 전쟁터가 되어 버린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지대에 위치한 농업 강국이다. 원자재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의 고물가 추세는 공급부족에 의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수요과잉에 의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경기호황과 더불어 진행된다. 반면에 공급부족에 의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부추긴다. 생산에 필요한 물자를 제때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경기와 고물가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일컫는다.
경제침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수요충격과 공급충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요충격은 수요를 구성하는 △소비△순수출△정부지출△투자가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2009년의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소비 위축이 그 예이다. 수요충격에 대응하는 방법은 확장적 재정 또는 통화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재정지출을 늘려 위축된 민간의 수요를 보완하고 기준금리를 낮춰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폭등은 전형적인 공급충격이다. 공급부족으로 인해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면서 물가상승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1970년대에 두 차례 있었던 석유파동이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면서 중동의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약 3개월 만에 원유가격을 거의 4배 인상했다. 이 조치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공급충격이 발생할 경우엔 단기적으로 대응방법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공급충격은 어떠한 여파를 낳을 것인가. 첫째, 적어도 1~2년간은 고물가 현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충격을 국민경제 전체가 몸으로 받아내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중앙은행의 고민은 더 커질 것이다.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구조 상 원자재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무역수지 적자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고의 고갈, 환율 급등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공급충격은 중장기적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을 불러일으킨다. 중동지역의 불안이 계속되자 많은 국가들은 대안으로 원자력,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린 바 있다. 또한 에너지 수입국을 다원화하고, 생산과 소비에 있어 에너지 효율을 강화했다. 즉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거나 수입원을 다원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원자재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현재의 공급충격과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우선, 선진국들은 에너지와 공급망에 관한 경제안보 해결에 더 큰 역점을 둘 것이다. 이번 에너지 가격의 폭등은 정치·군사적 갈등에 의해 촉발된 것이지만 변화는 경제 분야에서 나타날 것이다. 당장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수입을 올해 말까지 2/3 수준으로 줄일 것이며 석유수입은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미국, 중동과 같은 에너지 수출국과 동아시아와 같은 수입국에 모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이 조치는 화석연료 사용을 절감하는 기후변화 대책과 연계되어 환경관련 규제는 더욱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식량가격의 급등은 개발도상국의 정치·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10년에 발생한 중동지역의 민중봉기인 ‘아랍의 봄’ 사건의 도화선은 곡물 가격의 급등에 따른 민생불안이었다. 다시 말해 축적된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부조리가 치솟는 물가에 의해 폭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원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곡물 자급률도 20%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공급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며 다른 국가들의 대응에 따른 2차 충격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강유덕(LT학부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