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을 읽을 때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두 가지 일을 함께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건 없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주로 책을 구입하러 간 날의 기분에 맡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책을 맞이하는 데 둔한 태도로 임하는 건 아니다. 책을 고르는 나름의 체계도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선 내 기분이 어떤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면 그때의 기분과 비슷한 분위기의 책에 빠져들고 싶어진다. 첫 번째 단계가 끝나면 서가를 한 바퀴 둘러보며 두 번째 단계를 시작한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의 제목 과 겉표지를 천천히 살펴본다. 때때로 읽고 싶은 책이 여러 권일 경우 효율적인 결정 을 위해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간다. 이 단계의 핵심은 가장 먼저 손길이 닿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음악을 고르는 기준은 선율이지만 책과 노랫말의 언어가 같으면 머릿속에서 뒤엉키기 때문에 해외 곡과 피아노 연주를 선호한다.
책과 음악이 모두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감상이 시작된다. 독서는 세계를 창조한다. 한 줄의 글은 평면을 그린다. 두 줄의 글은 차원을 높인다. 세 줄의 글은 색을 입힌다. 다채로운 선율은 세계를 감싼다. 책을 읽으며 마주한 인상 깊은 구절은 색연필로 강조 표시를 하거나 휴대전화의 메모장에 기입한다. 뒤이어 앞서 표시했거나 기록한 구절을 다시 문서로 옮기는 사후 작업을 진행한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책이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가 선명해진다.
학보사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책을 읽을 때 들었던 음악을 재생한다. 책의 내용이 떠오르고 어느새 나는 그 세계 안에 있다. 주위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학보사실에 도착해 처음 정식 학보 회의에 참석했다. 한데 모인 학보 구성원들과의 첫 대화는 다정한 안부 인사로 시작됐다. 그런데 모두의 자리엔 책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책에 관한 질문으로 이야기가 흐르며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우린 서로가 읽고 있는 책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말했다. 다음으로 현재 책을 읽으며 느끼고 있는 점들을 나눴다. 모두 책을 읽고 나면 감상문을 남긴다든지 학보의 칼럼에 싣는다든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학보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우린 각자의 세계를 공유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를 더욱 알 수 있었다.
책엔 특별한 힘이 있다. 책이 만들어낸 세계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의 변화는 때론 타인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극진한 마음과 진실한 행동으로 그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싶다. 나의 글 한 줄이 세계가 창조되는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소망 은 지난 외대학보 제1061호의 독자 위원으로 활동하며 더욱 구체화됐다. 독자 위원 으로 학보를 정독하고 나의 생각을 담아내며 학보의 새로운 매력을 알 수 있었다. 학 보가 일방적인 정보 전달의 매체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학보는 언제나 해결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분리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소통을 돕는다. 또한 다른 독자 위원들 및 담당 기자와 의견을 나누며 같은 글을 읽고도 생각은 각양 각색일 수 있음에 큰 즐거움을 느낀 바 있다. 이렇듯 기사란 생각의 싹을 틔우는 힘을 가진다. 기자란 이러한 힘을 세상에 발휘하기 위 해 노력하는 존재다. 다양한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글을 작성하는 데 적극적인 내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세계가 창조되는 시작이 되고 싶다. 그런 ‘책’이 될 수 있는 기자를 꿈꾼다. 오늘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