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정의당은 파업으로 인해 피해를 본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노동조합(이하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 법)에 대한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본청의 교섭 의무△손해배상 면책 범위 확대△손해배상액 제한△합법적 파업 범위 확 대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경영계는 이번 개정안이 오히려 불법 쟁의 행위를 장려한다며 크게 반 발하고 있다. 개정안의 △내용△쟁점△타협안을 중심으로 뜨거운 논란 속 노란봉투법 개정안에 대해 알아보자.
◆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떠오른 배경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조법에서 개정된 내용이 담긴 노조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논의는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에서 시작됐다. 당시 쌍용자동차 노조에 47억 원을 손해 배상하란 판결이 내려지자 여러 시민단체에서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노동자 측에 보낸 것에서 노란봉투법이란 말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후 모금 운동에서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으로 움직임이 확산했지만 19대와 20대 국회에서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다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를 계기로 논의는 8년 만에 재점화됐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30%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고정비 지출과 지체 보상금을 주요 근거로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해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전에 논의된 노란봉투법의 내용이 일부 개정된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등장했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노동자 및 사용자 정의 확대를 주된 내용으로 한 노조법 2조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가압류 제한 항목을 담은 3조를 다룬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본청의 교섭 의무△손해배상 면책범위 확대△손해 배상액 제한△합법적 파업 범위 확대다. 이번 개정안은 노조의 단체 행동에 가해지는 손해 배상과 가압류의 규모 및 범위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노조법 제3조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 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조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폭력·파괴 행위 이외의 불 법 쟁의 행위가 발생한 경우△폭력·파괴 행위임에도 노조의 의사결정에 의 해 발생한 경우△노조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경우에 대한 가압류 및 손해 배상의 상황까지 기업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를 줄임으로써 노동자를 보호하겠단 것이다.
또한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이뤄진 파업만 합법으로 인정됐던 전과 달리 정리해고 반대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파업까지 합법으로 보도록 해 파업 보장을 더 확장된 개념으로 명시했다. 파업으로 인정되는 범위는 늘리고 기업의 손해에 대한 노조의 면책이 가능하도록 만들겠단 것이다.
개정안엔 근로자의 개념을 한층 거시적으로 보려는 시도도 담겼다. 회사 와 계약을 맺은 근로자만을 근로자로 규정했던 기존 법안과 달리 근로자의 범위를 특수 고용직과 하청을 준 업체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본청은 하청노조 교섭에 응할 의무를 갖게 된다. 이는 기업이 하청 노동자를 고용함에도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발생했던 그동안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함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개정안을 이번 해 정기국회 핵심 입법과제로 선정했다. 이를 통해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공동 추 진하는 ‘민생 야권연대 법안 1호’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환경노동위원회(이 하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진 의원은 “가압류·손해배상 실태와 세계적 입법 사례를 살펴보고 법안 도입 여부를 논의해야 할 때가 왔다”며 노조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표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노란봉투법과 관련된 개정 안은 모두 8개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노란봉투법에 반발하는 목소리
여당인 국민의힘과 경영계는 노란봉투법 개정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크게 기업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존재하는 것과 기업의 쟁의 대항 수단이 부재하단 것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노란 봉투법이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 재산권에 관한 본질적 내용을 침해 하므로 위헌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법안에 노조의 폭력·파괴 행위까지도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환노위 전체 회의에서 “정당한 △목적△수단 △절차에 의해 파업 행위가 벌어진 경우 노조법상 노동자의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지만 그렇지 않은 파업 행위에 대한 면책은 우리나라 기업에 과도 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노조법이 노조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쪽으로만 과도하게 치우쳐 기업의 쟁의 대항 수단이 부족하단 의견도 존재한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에 파업 손해의 범위를 엄격하게 따지거나 손해배상 청구액의 상한을 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제한을 가하는 내용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노조 특성상 파업이 번져 국내 기업은 파산의 위험 부담을 낮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고 우려했다. 개정된 노조법에선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유지되기 힘들단 것이다. 경영계에선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제도 정비△사업장 내 쟁의 행위 금지△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등을 쟁의 행위에서의 개선 사항으로 꾸준히 요구했으나 관련 법 안은 부재한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파업 중 대체근로 금지 규정은 노조 의 합법적 파업에 대한 기업의 대항적 조치를 막아 기업에 크게 불리한 규정으로 꼽힌다. 현행법상 파업 시 대체 근로는 △병원△수도△전기 등 필수 공익사업장에 한해 파업 참가자의 50% 내에서 가능하고 그 외엔 모두 금지 돼 있다. 이에 김희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의 파업권 을 보장한다면 그에 대한 기업의 대체 인력 투입권도 보장해야 한다”며 “근 로자들의 대다수가 파업에 참여하는 경우 기업은 폐업 이외엔 대항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법안 마련에 대한 논의 없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심화할 수 있단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파업권과 영업권 사이의 균형을 고려해 파업 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노동법 선진국 프랑스 를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도 일부 제한을 두고 대체근로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체근로 금지는 우리나라에서 관행적인 파업이 지속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기아자동차는 1990년부터 2017년까지 2년을 제외하곤 27년 동 안 매해 파업이 진행됐으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430회가 넘는 파업을 겪었다. 경영계는 무분별한 쟁의 행위로 인한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 악화는 곧 연구개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 환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달 19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체근 로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균형적 노사관계 확립을 위한 개선방안’을 고용 노동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 타협안을 찾기 위해선
다른 나라에선 기업이 쟁의 행위를 이유로 노동자나 노조에 고액의 손해배 상 소송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다. 노동권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독일이나 영국 등의 국가에서도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다만 청구권과 함께 청구를 어렵게 만드는 장치 또한 구축돼 있다. 영국은 노조 규모에 따라 배상액의 상한선이 법으로 규정돼 있다. 법이 아닌 각 판 례에 따라 판단하는 독일은 파업 손해액을 과도하게 산정하는 것을 막고 있다. 지난 2012년 독일의 기업 ‘루프트한자(Lufthansa)’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 액으로 900만 유로를 주장하며 그보다 더 적은 손해배상금을 요구했으나 법 원은 해당 청구를 기각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가 가 능하지만 개별 근로자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청 구권에 따른 방어장치로 인해 사측의 실익이 크지 않아 손해배상 소송 사례가 드문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9년 쌍용자동차△2010년 현대자동 차와 케이이씨(KEC)△2011년 유성기업과 한진중공업△2013년 상신브레이크△2018년 CJ대한통운 등 기업이 노조를 향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손해배상금 액수 또한 몇십억 단위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민주당은 앞선 위헌 논란을 반영해 합법적 쟁의 행위의 범위는 넓히되 불 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 자체는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절충안을 모색 중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우리나라에 비해 파업의 적법성이 인정되 는 범위가 더 넓어 손해배상 청구 금지 관련 법안의 필요성이 우리나라만큼 크진 않다. 프랑스는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 등 △고용보장△고용안정 을 위한 파업△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사회적·경제적 파업 등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관련된 쟁의 행위는 모두 정당한 파업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경제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노사 간 균형을 유지하 기 위해선 파업 시 기업 유지와 업무 연속성을 보장하는 노사관계 선진화 정 책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동권과 재산권 사이 합리적인 타협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노란 봉투법 개정안이 노사 간의 우호적 협력 관계를 다지는 초석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 비 기자 04hanb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