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종합식품 기업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 가 발생했다. SPC 기업은 사고 발생 다음 날 같은 공장 다른 기계에서 평소와 같이 작업을 진 행하는 등 잘못된 대응으로 국민의 빈축을 샀다. 이후 분노한 소비자들이 SPC 계열 기업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불매운동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한편 일각에선 가맹점주들의 피 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불매운동의 현황과 역사△불매운동의 효과△불매운동 으로 인한 가맹점주의 피해△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불매운동의 현황과 역사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SPC 기업은 사고 발생 다음 날 같은 공장의 다른 기계에서 평소와 같이 작업을 진행했고 사망한 근로자의 장례식엔 조문객 답례품으로 빵을 보내 많은 사람의 빈축을 샀다. 이에 분노한 소비자들은 SPC 기업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사고 발 생 8일 후 다른 SPC 계열사 공장에서 근로자의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가 발생하자 불매운동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됐다.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번 불매운동은 급격히 확산돼 SPC 직영 업체뿐 아니라 가맹점 및 SPC에 서 재료를 납품받는 업체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SPC 기업 계열사인 SPC삼립은 지난 2분기 역대 최대 매출인 8,149억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3 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SPC삼립의 대표 상품인 포켓몬빵의 매출이 불매운 동의 여파로 대형 마트 기준 약 10% 가량 줄었다. 또한 SPC 기업의 또 다른 계열사인 파리바게뜨(Parisbaguette)의 가맹점 평균 매출은 불매운동 이후 20%에서 3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가격이나 품질이 절대 기준이었던 기존 소비 행태와 달리 윤리적 신 념이나 사회적 영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가치소비’가 사회적으로 주목받 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는 물건 자체만이 아닌 해당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과 그 기업의 △경영철학△윤리 의식△지속가능성△환경까지 고려해 소비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 하지 않는 기업의 물건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지난 2020년 한 국리서치가 진행한 ‘착한 소비에 관한 인식 및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 상의 60% 이상은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비윤리적이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제품 자체가 우수하더라도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이라면 구매를 꺼린단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SPC 사고 이전에도 다양한 불매운동이 이뤄져 왔다. 1990년 도에 발생한 삼양라면 우지파동은 우리나라 소비자의 장기적인 식품 불매 운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불매운동은 삼양라면이 인체에 해로운 우지를 사용해 라면을 만들었단 검찰의 발표 후 본격적인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삼양라면의 매출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의 공장이 문을 닫는 등 회사가 존폐위기까지 몰렸다. 지난 2013년에 시작된 남 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남양유업은 한 지역 대리점을 상대로 강매를 한 사실과 회사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행한 녹취록이 함께 공개돼 거센 비난을 받았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2013년도에 남양유업은 17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내에서의 불매운동이 외국 기업을 상대로 큰 영향을 끼친 사례도 있다. 지난 2019년 일본이 우리나라에 가한 수출통제 조치로 인해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유니클로 (UNIQLO)와 아사히(Asahi) 등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매출 감소 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되고 두 달 만에 유니클로 매장 3곳이 폐업했고 2019년 1조 3,780억 원이었던 우리나라의 유니클로 매출은 2020년과 지난해에 각각 6,297억 원과 5,824억 원으로 감소했다. 우리나라 내 일본 맥주 수입량 또한 2018년 8만 6,675톤에서 2019년 4만 7,330톤으로 급감했고 지난해엔 7,751톤을 기록하며 2018년 대비 90% 넘게 하락했다.
◆불매운동의 양면성
기업이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면 매출이 감소할 뿐 아니라 기업의 평판도 자연스레 하락하게 된다. 소비자는 이러한 불매운동의 특성을 이용해 기업에 의사를 전달하고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독일제품 불매운 동이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 사례로 꼽힌다. △벤츠(Benz)△폭스바 겐(Volkswagen)△BMW는 히틀러 치하에서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강제 노 동을 시킨 전범 기업이다. 그러나 이들은 나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독 일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위기감을 느낀 독일 정부와 기업은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설립해 강제 노동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피해 보상 을 했다. 이처럼 불매운동은 소비자들의 단합을 통해 기업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단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박정은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하 박 교수)는 “불매운동은 기업을 변화시키고 선순환을 가져오기에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불매운동 확산으로 인해 가맹점주나 노동자만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단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프랜차이즈업 특성상 불매운동으로 매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는 쪽은 본사보다 가맹점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SPC 기업 불매운동의 직격탄 또한 SPC 기업 자체가 아닌 파리바 게뜨를 비롯한 가맹점주들에게 향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불매운동 이후 가맹점 평균 매출이 20%에서 30%가량 줄었다. 서울시에 서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가맹점주는 “문 앞에서 서성대다가 돌아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며 “우리는 죄가 없는데 같이 벌을 받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SPC 계열사 공장에서 산업재해가 잇따르며 불매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맹점주의 매출 감소 피해를 보상할 실질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8년에 개정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 사업법)’이 존재하지만 법조계는 이 법률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 했다. 가맹사업법 제11조에선 가맹본부 또는 가맹본부 임원의 위법행위로 가맹점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을 가 맹계약서에 넣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개정 이전에 가맹계약을 했더라도 가맹본부가 매해 정보공개서를 갱신해야 하기에 가맹점이라면 누구나 해당 조항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맹사업법으로 가맹점주가 배상을 받 은 사례는 극히 드물고 현재까지 가맹점주가 불매운동으로 피해를 봤을 때 본사에 손해 배상을 요구해 승소한 판례는 없다. 가맹점이 받은 피해와 불매 운동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도에 가수 승리가 사내이사로 있던 아오리라멘 가맹점주들이 승리의 성매매 알선 논란으로 매출이 급락했다며 본사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 가맹점주들의 법률대리를 맡았던 강성신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는 “매출 감소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으나 불매운동 때문에 매출이 감소했단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가맹사업법 조항에 명시된 위법행위의 주체가 본사가 아닌 가맹본부 혹은 본부의 임원이란 점도 가맹점주가 손해 배상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의 가맹계약서상 가맹본부는 SPC가 아닌 SPC 지주사 파리크라상(Paris Croissant Food Company)이다. 소비자는 SPC 기업 의 안전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해 그 자회사인 파리바게뜨에 불매 운동을 진 행하지만 정작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은 안전관리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파리크라상 법인에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법은 가맹본부와 가맹점 간의 관계만 규정하고 있기에 이번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주들의 피해를 가맹사업법으로 배상하는 건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며 “가맹본부뿐만 아니라 그 본사까지로 규제 범위를 넓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나아가야 할 방향
불매운동이 계속되며 SPC 계열사 가맹점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는 만큼 법적 책임을 떠나 본사가 윤리적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배상에 나서야 한단 목소리가 존재한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SPC 계열사 가맹 점주들은 본사와 소비자 사이에 낀 피해자다”며 “이번 SPC 사고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본사가 배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본사가 직 접적으로 처벌 받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근본적인 문제란 의견도 있다. 미국은 회사가 위법행위를 저지르거나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당 기업의 사업주가 가중처벌을 받는다. 기업에 직접적으로 처벌이 가해지기에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하지 않아도 기업이 스스로 잘못된 점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불매운동으로 인해 소상공인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줄어들도록 기업의 대표가 직접적인 처벌을 받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불매운동은 소비자가 소비 주권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가맹점주의 피해를 간과해선 안 된다. 소비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불매운동으로 가맹점주의 매출이 줄거나 공장이 문을 닫는 게 아니다. 소비자는 △노동자의 인권 보장△진심 어린 사과△재발 방지를 위한 체계 개선을 이행하는 기업을 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의 좋은 상품을 죄책감 없이 소비하길 바랄 뿐이다. 기업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변화를 촉구함과 동시에 가맹점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양진하 기자 04jinh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