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속여야만 했던 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질’은 처형이 집행되기 직전 우발적으로 자신이 유대인이 아닌 ‘레자’라는 이름의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마침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길 원했던 수용소 대위 ‘코흐’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처형을 면한다. 코흐는 레자에게 하루에 4개의 페르시아어 단어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고 레자는 살아남기 위해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조어하며 페르시아인 행세를 이어간다. 날이 갈수록 외워야 할 단어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겪지만 레자는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의 이름을 변주해 단어를 만드는 기지를 발휘하며 어려움을 극복한다.
레자의 아슬아슬한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은 정체가 탄로날 위기를 여러 차례 모면하면서 간신히 지속된다. 코흐는 처음엔 레자를 의심했지만 결국 주인공을 신뢰하며 우정을 느낀다. 코흐는 수용소의 포로들을 주기적으로 처형하는 날이 올 때마다 레자를 농장으로 빼돌리거나 음식을 챙겨주는 등 특별하게 대우한다. 이후 전쟁이 막바지에 들어서자 수용소의 모든 증거와 기록을 말소하고 철수하라는 지 시가 내려오면서 코흐는 레자와 함께 혼란을 틈타 수용소를 빠져나온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 페르시아로 가고 싶었던 코흐는 레자를 놓아주고 이란 입국심사장에서 레자가 알려준 가짜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다가 체포된다. 한편 연합군의 심문을 받게 된 레자는 수용소에 있던 이들 중 기억나는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영화는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웠던 2,840명의 포로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름이 없는 건 아무도 알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죠’라는 주인공의 대사는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수용소에 수감 된 모든 포로들은 익명의 존재들이다. 폭력은 익명성으로 매개될 때 더 쉽게 작동한다. 이름의 박탈은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현저히 희석하고 폭력의 정당화를 돕는다. 이름은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수용소에서의 그들은 인간적인 서사가 배제된 채 그저 노동력을 제공하다가 처형될 도구화된 존재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비로소 잔학과 폭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레자와 코흐가 가짜 페르시아어로 대화를 하며 우정을 쌓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담론이 성립하면서 이전엔 자취를 감췄던 일말의 인간성이 출현한 것이다. 연대와 인권은 상대를 담화의 주체 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타자의 고통과 개인적인 서사를 외면 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를 통해 익명성으로 인한 간극은 좁혀지고 친밀성에 기반한 인격적 교감이 이뤄진다. 한편 호명은 잊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수감됐던 포로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나치의 증거인멸로 부인된 그들의 존재성을 재확인한다. 그들의 인간적 현존을 선포하는 것이다. 호명은 레자가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전쟁범죄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애도는 이와 같은 호명의 기반 위에서만 수행될 수 있다.
송성윤 기자 06sys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