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학보사실에 수습기자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만 해도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이 다가오니 시간 앞에 속절 없단 말이 절로 느껴진다. 기상이변으로 이번 해 겨울은 우리에게 조금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지만 무수히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학교를 거닐다보면 새삼 만추를 체감하게 된다. 한여름의 방중교육과 수습 신문 발행을 마치고 정기자가 된 내 첫 정식 기사는 우리학교 졸업생이신 한 아나운서의 인물 인터뷰였다. 선배님께선 내가 바라던 근사한 사회인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계셨다. 원하던 학과에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하고 싶은 일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모습은 후배인 내게 큰 귀감이 됐고 인터뷰 내내 나도 모르게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게 도전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좋은 자극을 받고 열심히 살다보니 끝날 것 같지 않던 이번 학기 철야 작업도 한 번만을 앞두고 있다. 누가 내게 학보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이 철야 작업이다. 평소 밤 11시면 취침하고 6시에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던 내게 철야 작업은 고난 그 자체였다. 쪽잠을 잘 수 있지만 낯선 환경과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의자에 걸터앉아 청하는 잠은 오히려 눈꺼풀만 무겁게만 했다. 그렇게 밤새 써내려간 기사를 조판하고 퇴근하면 난 침대 밖으로 나오질 못했고 끼니도 거른 채 밀린 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러나 누가 내게 학보 기자로서 가장 보람찼던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역설적으로 철야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철야 작업은 내게 가장 힘들지만 가장 보람 있는 것, 속된 말로 ‘모순덩어리’다. 한여름 첫 마감을 할 당시 건물의 시설관리팀과 소통이 잘 안돼 에어컨도 안 나오는 학보사실에서 모두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로 마감을 했다. 날씨는 덥고 잠을 못 자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흐르는 그 적막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기사를 몇 번이고 수정하며 정말 당장이라도 집으로 도망가 냉수 샤워를 하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하기 싫은 마음이 굴뚝 같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이때의 기억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만추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니 한여름 학보사실에서 흘린 땀으로 스물 셋 내 청춘의 여름을 돌아보게 된다.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 미화가 돼서 추억이 된 건지 내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은 건지 몰라도 이때 흘린 땀의 노고가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란 내 안의 작은 확신이 있다.
이번 해 학보의 종강호 발행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지난 여름 다 같이 학보사실에서 울고 웃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지만 종강호가 발행되면 철야 작업을 하다 107기 기자들과 함께 산책 나와 캠퍼스의 단풍을 감상 하던 추억을 곱씹을 것 같다. 학보에 들어와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 학과도 개성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선한 마음을 가진 107기 동기들 덕분에 철야 작업도 버틸 수 있었고 올해를 예쁜 추억들로 채워 나갈 수 있어 감사하다. 107기 동기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힘든 순간에 가끔 ‘2023년 학보사실’을 떠올려 작게나마 힘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온 마음 다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