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 라이프’를 보고] 안정된 모든 것은 약하다

등록일 2024년05월29일 23시5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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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이 미식축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한 가족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아들 ‘조(Joe)’는 엄마인 ‘지넷(Zinet)’으로부터 공부를 배우고 아빠인 ‘제리(Jerry)’로부턴 미식축구를 배우며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바른 청년으로 자란다. 소박하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가정은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부서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무릎에 흙이 묻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골프장에서 손님들의 신발을 닦았던 제리는 하루아침에 해고당한다. 그는 고작 2주 치 급여를 갖고 집에 돌아오지만 누구도 제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가족의 응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시 돌아와 달라는 골프장의 요청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한 뒤 마트 직원을 무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 상황에 지넷은 결국 수영장에서 강사를 맡는다. 또한 그의 아들인 조도 사진관에 취업해 조금씩 돈을 벌어온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빼고 모두가 직업을 구해 일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다. 결국 자신의 자존심을 이기지 못한 채 근처에서 번진 산불을 끄러 간다고 밝히며 가족을 떠난다. 

 

지넷은 자신과 아들이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우울과 슬픔에 젖은 것도 잠시 그녀는 달라진다. 다음 날 한껏 꾸미고 나타난 그녀는 “자기연민은 필요 없어”라며 수영장 강사도 그만둔다. 그리고 그날 거실엔 지넷에게 수영을 배운 ‘밀러(Miller)’라는 나이 든 남자가 앉아 있다. 자신과 아들이 살아가기 위해선 밀러의 힘이 중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까지 가족만 바라보며 살아온 그녀의 일탈일 것일까. 그녀는 밀러가 초대한 저녁 식사에 아들과 함께 참석하고 결국 아들 앞에서 그와 사랑을 나눈다.

 

엄마가 다른 남자와 함께하는 모습을 본 16살 조는 혼란스럽다. △분노△원망△질투가 섞인 조는 엄마에게 “밀러를 진심으로 사랑해요?”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엄마는 답이 없다. 결국 가족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찬 조는 떠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초라한 가족일지라도 조는 버릴 수 없어 떠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제리는 돌아왔지만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고 결국 그들은 완전히 갈라섰다. 평화롭던 한 가정은 너무나 쉽고 허무하게 부서졌다. 

 

콘크리트 속에 자라나는 작은 식물들은 큰 건물을 부술 수 있다. 사소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견고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견고하다고 생각할수록 방심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우리의 △가정△인간관계△직장△학업이 평화롭고 만족스럽다면 이런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에 취약한지 생각해야 한다. 늘 공포에 떨며 살라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늘 안정된 것들의 취약성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쌓은 견고함을 지킬 수 있다.

 

 

박진하 기자 08jinha@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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