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마음 한구석에 모순되는 두 감정을 지니고 있다. 세간엔 도덕적 갈등 혹은 사회적 불신과 같이 인간을 둘러싼 문제가 만연해 있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는 존재인 것일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라쇼몬’은 교토의 황폐한 라쇼몬 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하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악이 만연한 사회와 그 속에서 무너진 도덕적 경계 위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모호함 속에서 점점 변해간다. 굶주린 그에겐 남의 물건을 훔쳐서라도 생존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동시에 양심이 그를 갈등하게 만든다. 비 오는 밤 라쇼몬 문에서 만난 한 노파는 그를 더욱 극단적인 선택의 길로 안내한다. 그 노파는 생계를 위해 가발의 재료로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시체도 생전에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았기에 본인을 이해할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도덕성을 버릴 수도 있음을 깨달았고 노파의 옷을 빼앗은 뒤 사라지는 걸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인간의 도덕이란 무엇일까. 생존을 위해선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답은 변할 수 있다. 인간은 삶의 필요에 따라 선과 악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고 이를 변화시킨다. 작중에서의 노파의 행위는 우리에게 추악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생존을 위한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이를 본 하인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기준을 바꾸기로 결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과 도덕의 본질성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이는 상황에 따라 선도 악도 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가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하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도덕적 규범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며 자신도 그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삶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자 그는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일상의 도덕적 기준을 가질 수 있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선 그 기준이 붕괴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무수한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때로는 공동체의 규칙을 무시하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인의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양면적인 존재임을 시사한다.
인간의 본성은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다. 그 경계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믿음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기준 속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장휘영 기자 07hwi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