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해 말까지 낙태죄 관련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이에 지난달 7일, 정부는 후속 조치로 기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임신중지 부분적 허용이다. 그러나 14주 이내란 기간 제한으로 반발이 거세다. △낙태죄 개정안의 내용△낙태죄 개정안의 문제점△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낙태죄 개정안으로 불거진 갈등
기존 낙태죄는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했다. 또한 이를 도운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임신 초기의 임신중지까지 처벌하는 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낙태죄 관련법 조항 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지난달 7일, 정부는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일부 허용 조항을 신설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형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 여성은 임의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 임신 24주 이내엔 △근친 간 임신△성범죄로 인한 임신△임산부나 배우자의 유전적 질환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또한 상담과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선 자연유산 유도 약물을 사용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여러 여성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낙태죄 개정안이 발표된 다음 날인 지난달 8일,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의전화 등 20여 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활동가들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 누워 항의 시위를 열었다. 또한 지난달 12일, 여성의원 11명이 모여 형법에서 낙태죄를 삭제한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낙태죄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문제점은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고려되지 않았단 점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낙태죄 개정안,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에
임신중지 수술은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실행돼왔다. 2018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약 5만 건의 임신중지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조사에서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의 약 20%가 임신중지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의료계는 출산율과 임신중단률이 거의 비슷하다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불법임에도 임신중지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의견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 실제 2018년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여성의 의견을 반영하며 낙태죄 폐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개정안 논의에 여성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9월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법무부△복지부△여성가족부가 모인 낙태죄 개정안 관련 회의에서 여성가족부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했으나 묵살됐다. 여성단체의 국무조정실 면담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 목소리가 들어가지 못한 낙태죄 개정안에서 여전히 처벌 대상은 여성과 의사에 한정된다. 임신에 필요한 정자를 제공한 남성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선택적 처벌은 남성이 임신중지를 시도한 여성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 2017년, 20대 남성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그를 낙태죄로 고발하고 수술한 의사에게 600만 원을 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걸림돌 많은 낙태죄 개정안 실행과정
낙태죄 개정안은 실행과정에 걸림돌이 많다. 그중 하나는 부족한 의료인력이다. 낙태죄 개정안 내 임신중지는 14주 이내 의사 집도하에 실시된 수술인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이런 임신중지는 지역별 의료인력 격차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 강남구 내 산부인과는 100곳 이상이다. 그러나 경상북도 영양군과 같은 수도권 외 지방엔 산부인과가 한 곳이거나 아예 없다. 특히 이번 해 1월, △모체태아의학회△산부인과의사회△산부인과학회 등은 공동성명을 통해 모든 임신중지 서비스 제공 주체를 산부인과 의사로 한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11년간 서울대학교병원의 전공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2017년의 산부인과 충원율은 83%로 정원 미달이다. 결과적으로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임신중지 시술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의료진을 위한 진료 표준이 마련돼있지 않다. 임신중지를 위한 정식 훈련도 불충분하단 점을 고려하면 빠른 의료인력 양성은 더욱 어렵다.
또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선 종교나 가치관 등 의사 개인 신념에 따른 진료 거부를 인정한다. 거부한 경우 다른 기관에 진료를 안내하지 않는 등의 처우는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개인 신념에 따른 진료 선택권과 더불어 다른 시술 기관으로 안내할 선택권 역시 요구하고 있다. 즉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사가 수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취하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안내할 의무엔 등 돌리고 있다.
임신중지 약물을 도입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약물로 임신중지가 가능하단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관련 조제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약의 조제권을 두고 의사와 약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한모체태아의학회△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사단체는 ‘약물 의사 직접 조제 원칙’을 주장했다. 약사법 제23조 4항의 의약분업 예외 약품 지정 규정에 따르면 의학적 필요와 환자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의사가 직접 약을 조제할 수 있다. 즉 의사단체는 임신중지 약물이 이에 포함된단 것이다. 그러나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분업 원칙을 강조하며 “합당한 명분 없이 임신중지 약물만 예외로 의사가 제조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임신중지 약물 중 유명한 ‘미프진’ 도입엔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7일,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모자보건법△약사법△형법 개정 입법이 예고됐기에 현재 의약품 품목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제약회사는 섣불리 미프진 허가 신청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식약처에 제공해야 하는 2가지 임상시험의 기간이 최소 2년이 걸리고, 승인을 위한 자료 검토가 약 1년 정도 걸린단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신중지를 반대하는 종교 단체 등에서 보이콧을 당할 수 있단 위험도 있다. 이동근 약사단체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국내에 허가되지 않은 약을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받는 것처럼 미프진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방법엔 임상시험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낙태죄 개정안이 입법돼도 각종 갈등을 해결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이전의 낙태죄는 사문화된 법안이다. △대법원△법무부△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현황 및 낙태죄 관련 처벌 현황’을 보면, 최근 10년간 낙태죄 기소는 연평균 9.4건에 불과했다. 2017년 기준 임신중지가 약 5만 건 이뤄졌고, 그해 합법적 사유의 임신중지가 약 4천 건이었단 것을 고려하면 기소로 이어진 경우는 매우 적다. 불법 임신중지 수술 의사의 한 달 자격 정지 행정처분도 2018년 2월 이후 1건도 없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법안이지만 그 존재로 인해 여성들은 처벌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이에 사문화된 낙태죄를 폐지가 아닌 개정으로 죄를 되살리는 것은 더 많은 여성을 불법 수술로 내모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는 “낙태죄가 두려워 임신중지를 하지 않는 여성은 없고 불법화된 임신중절 수술로 고통받는 여성만 있을 뿐이다”며 낙태죄 존치가 아닌 실효성 있는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의 경우 1988년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으며 사라졌다. 현재 캐나다 국적 여성이 임신중지를 결정하면 정부는 관련 비용을 제공한다. 또한 주변에 수술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이동해야 한다면, 숙박비와 교통비를 지원한다. 이에 임신중지가 남용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2018년 캐나다 임신중지율은 5~44세 사이 인구 1천 명 기준 11.7%이다. 우리나라의 15%보다 적은 수준이다. 낙태죄 존치가 임신중지를 줄이는 방법이 아님을 방증하는 사례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신중지가 처벌이 아니라 지원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판정할 당시, 그 이유로 “낙태죄가 임신중지를 줄이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사문화된 법안의 부활이 아닌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진보적 시각이 필요할 때다.
이현지 기자 100hyunz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