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일 일본은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나라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신일본제철에 대한 강제 징용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에 인당 1억 원가량의 배상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일본은 우리나라 핵심 산업 소재인 반도체를 겨냥해 이와 관련된 물자들을 수출하는 규정을 까다롭게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을 통해 일본의 조치에 불만을 표출했다. 한편, 청와대는 지난달 22일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이하 지소미아)’을 전격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현재 두 나라의 외교 상황으로 미뤄 봤을 때 충분히 타당한 결정이란 입장도 있으나, 군사적으로 기밀 정보를 입수할 출구를 닫는 것은 극단적 선택이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현재 경직된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두 나라의 외교부 장관 회담에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윤석상 우리학교 융합 일본 지역 학부 교수(이하 윤 교수)와 최은미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 교수(이하 최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최근 외교 갈등에 대해 알아봤다.
Q1.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 간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시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 교수 : 최근 두 나라는 지난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도모하고자 개최된 ‘김 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의 모멘텀을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지속하던 갈등을 마무리하고 보다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행사에도 불구하고 △제주 국제관함식 욱일기 게양문제△레이더 조사 및 초계기 사건△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동원판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었던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우리나라의 지소미아 연장 종료 등 다양한 사안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출관리 강화 및 지소미아 파기 등의 직접적 촉발 원인은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동원문제 판결에 대한 일본의 수용 불가에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하지 못해 쌓여온 다양한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Q2. 일본 백색 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발표됐는데 백색 국가란 무엇이며, 어떤 영향을 불러올까요?
윤 교수 : 백색 국가는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전자 부품 등의 전략물자를 타 국가에 수출할 때 허가신청을 면제받는 국가를 칭합니다. ‘화이트리스트 국가’ 또는 ‘안전보장우호국’ 이라고도 부르죠.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 품목으로 약 1,120개를 지정했는데 이중 △미사일△생화학무기△핵물질 등 263개 품목은 백색 국가 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수출 시 개별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백색 국가의 경우 그 외의 품목은 한번 허가를 받으면 3년 동안 개별적인 허가를 받지 않아도 돼 수출 과정이 간소화됩니다. 따라서 거래 당사국엔 편리하다는 장점이 생기는 것이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백색 국가 제외가 어느 한쪽에만 영향을 미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란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분야의 경우 한·일 양국은 비교우위가 확실한 분업 체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도 삼성과 SK하이닉스 없이 생존할 수 없단 점에서 오히려 일본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죠. 우리나라와 일본이 긴밀한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로 연결돼 있기에 양국 모두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 용어로, 가치사슬 활동이 한 국가 내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국가에 걸쳐 일어날 경우에는 글로벌 가치사슬이라고 부른다.
Q3. 일본의 백색 국가 제외 조치에 대해 우리나라는 대응책으로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했습니다. 지소미아란 무엇이며 지소미아 파기를 통보한 것이 두 나라에 어떤 효과가 있나요?
최 교수 : 지소미아는 한·미·일 3국이 협력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정보 등을 파악하기 위해 체결됐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처음으로 맺은 군사협정으로 2016년 11월 북한의 핵실험 강행 등 안보 위협이 고조된 데에 그 배경이 있습니다. 이후 지소미아는 기존보다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써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한 이유는 일본이 안보상의 문제를 내세워 우리나라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한 대응 수단이었습니다. 이는 일본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대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일본의 일방적인 경제 조치에 대해 순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더불어 일본의 추가적인 조치를 막는 기대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윤 교수 : 지소미아를 파기한 것 자체가 일본을 겨냥한 압박 수단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갈등의 귀책 사유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일본의 입장을 강화할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이 정보력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죠. 현재 일본정치사회는 ‘이항대립의 정치’가 일상화됐습니다. 이항대립의 정치 방식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협력을 어렵게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소미아 파기는 우리나라를 일본의 ‘적’으로 돌려 자국의 보수우익 체제를 공고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Q4. 지소미아 파기를 비롯한 한·일 관계에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떤가요?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 교수 : 지소미아는 실질적인 북한 정보 교류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우리나라△미국△일본 세 나라가 공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큽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각국의 시각은 각자 다릅니다. 사실 지소미아 파기는 한·일 관계보다는 한·미·일 관계 내지는 한·미관계에 더욱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소미아가 미국의 필요에 의해 체결됐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미국이 특히 유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역사적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해 온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갖는 심각성에 대해 국제사회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불어 양자 간의 문제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적지 않습니다. 한·미·일 안보협력과 경제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특히 갈등이 심화할 경우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상승해 전체의 성장률을 낮추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상품의 연쇄적인 생산 및 공급 과정이 여러 나라에 걸쳐 일어나는 경우 이를 글로벌 공급망라고 한다.
Q5.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러한 시국에 동감해 진행하는 불매 운동이 한창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최 교수 : 불매운동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지만, 일본이 체감하는 효과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 대한 이미지 악화△일본상품에 대한 판매 저하△관광 취소 등에 따른 일본 지역산업서 소득 저하 등이 장기화될 경우에 우리나라에 대한 추가적인 무역 보복 조치가 더욱 신중해질 수 있습니다.
Q6. 일본 시민과 학계는 우리나라와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윤 교수 : 최근 일본에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 내 일부 시민들도 혐한 조장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현 상황을 우려하는 학자들을 주축으로 반(反) 아베 운동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만 여 명이 참여하며 시작된 ‘한국은 적인가?’라는 아베 정부 규탄 서명 운동입니다. 그러나 일본 언론에서는 이러한 자국 내 △학계△사회지도층△시민들의 여론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어 사회적 반응이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 : 일본의 지한파 그룹과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은 우리나라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쉽게 동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갈등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미디어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현재 조치가 마땅하다고 보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이처럼 두 나라 간 얘기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의 차이도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다민 기자 98bdaminc@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