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내무부가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3일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이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정부 수립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향후 탈레반을 법적 정부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국제 사회에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아프간 정부의 항복으로 이어진 미군 철수△탈레반 정부 인정을 놓고 갈라진 국제 사회의 반응△국제 사회의 아프간 사태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시도에 대해 알아보자.
◆아프간 정부의 항복으로 이어진 미군 철수
지난달 15일 아프간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에 사실상 항복했다. 국토 대부분을 장악한 탈레반이 수도 카불 관문까지 진입해 정부 측에 투항을 요구하자 결국 정부는 정권 이양을 약속했다. 이날 압둘 사타르 미작왈 아프간 내무장관은 “더 이상 탈레반이 수도를 공격할 일은 없으므로 아프간 시민은 안심해도 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카불 함락 시점을 미군 철수 이후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로 예상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미군 철수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점인 지난달 14일 북부 최대 도시이자 반 탈레반 거점 도시인 마자르-이-샤리프와 수도 카불의 동쪽 방어벽인 잘랄라바드까지 점령했다. 15일엔 아프간 34개 주도 가운데 25곳을 함락한 상태였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할 수 있었던 원인으론 미군 철수와 아프간 정부의 부패가 지적된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9·11 테러 사건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이하 빈 라덴)은 미국의 추적을 피해 당시 탈레반 집권하에 있던 아프간에 몸을 숨겼다. 미군은 탈레반에게 빈 라덴을 넘기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이는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이어졌다. 미군은 같은 해 10월 7일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12월 14일 탈레반 정권은 막을 내렸다. 미군은 탈레반 정부 대신 수립된 아프간 정부군을 지원하며 아프간에 주둔했으나 2011년 5월 빈 라덴이 사망하자 미군의 아프간 주둔 명분이 사라지게 됐다. 또한 아프간 내 탈레반 축출과 친 서방 성향의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미국이 지난 20년간 약 2,600조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원했음에도 아프간 정부가 자립하지 못한 점도 지적된다. △아프간 대선 부정선거△정부군의 부패로 인한 잘못된 병력 통계△투명하지 않은 예산 내역 등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미군 철수 결정에 대해 “미국의 국익과 맞지 않는 분쟁에 계속 남아 싸우는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탈레반 정부 인정을 놓고 갈라진 국제 사회의 반응
한편 국제 사회에선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을 향후 합법 정부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내놨다. 친미 아프간 정부를 지원해왔던 서방 진영에선 탈레반을 공식 정부로 쉽게 인정해선 안 된단 입장이다. 지난 17일 유럽연합(EU)의 주제프 보레이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탈레반과의 대화 의사를 밝혔으나 해당 발표가 탈레반의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단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18일 국제통화기금(IMF)은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의 국제통화기금 재원 이용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영국 언론 로이터(Reuters)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제 사회에선 아프간 정부를 인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엇갈린 상황이다”며 “미국의 요청으로 아프간은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이나 국제통화기금의 다른 자원에 접근할 수 없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은 아프간의 해외 자산도 동결했다. 아즈말 아흐마디 전 아프간중앙은행 총재에 따르면 아프간 중앙은행의 자산은 약 90억 달러(약 10조5천억 원)로 대부분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미국 연방준비제도△세계은행(World Bank) 등에 묶여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은 탈레반 정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탈레반을 ‘아프간의 새 정권’이라 표현하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탈레반이 아프간 발전에 중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으며 중국은 아프간 평화와 재건에 건설적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을 향한 중국의 우호적 태도에 대해 앤드류 샐먼 아시아타임즈 기자는 “탈레반이 중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독립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어 중국은 현재 위기와 기회에 함께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아프간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기에 중국의 외교 전략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다”고 전했다. 한편 1970년대 소련 시절 아프간을 침공했던 러시아는 좀 더 유보적인 자세를 드러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탈레반의 합법 정부 인정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단 입장을 밝혔다.
◆난민 문제가 대두된 아프간, 국제 사회의 인도주의적 접근은
탈레반이 수도를 장악하고 정권을 넘겨받은 후, 점령지에서 국한됐던 압제적 통치가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의 통신사인 AFP(Agence France-Presse)에 따르면 탈레반은 △미혼 여성이나 과부 등과 탈레반 조직원 사이의 강제 결혼 명령△아프간 정부 기관에 근무한 민간인 살해△병력 확보를 위한 청년 강제 징집을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선 이를 피해 국외로 떠나려는 ‘아프간 대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미국의 다목적 비영리 통신사 AP(Associated Press)는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엔 해외로 탈출하려는 인파가 몰려들었다”며 “현지 항공사 항공편은 다음 주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설명했다. 로리 스튜어트 전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은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이제 아프간 상황은 인도주의적 재앙이 됐다”며 “고국을 떠나는 난민을 위해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선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따라 아프간 침공에 함께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도덕적 의무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단 지적을 내놨다. 지난달 18일 필리핀 정부는 아프간 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단 입장을 내놨다. 해리 로케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필리핀은 인권을 위협받고 고국을 떠난 개인에게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할 것이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캐나다와 영국 또한 아프간 난민 수용 인원을 20,0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지난 18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최근 한 달간 피난을 떠난 아프간 어린이 75,000여 명의 안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른 시일 내에 이들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재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탈레반을 피해 자국을 탈출하려는 아프가니스탄인 중 우리나라 정부에 협력한 현지인과 그 가족 390여 명이 우리나라에 군 수송기로 도착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같은 달 25일 오전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아프간 협력자는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로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다”며 “정부는 △유사한 입장에 처한 아프간인을 다른 나라도 대거 국내 이송한다는 점△국제적 위상△심각한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등을 감안해 이들의 국내 수용 방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 장지향 박사는 “우리나라에 협력했던 현지인 직원을 돕는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며 아프간 협력자 보호의 필요성을 전했다. 탈레반의 공포 정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프간 시민의 안전과 존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별인출권: 국제통화기금에서 출자없이 가맹국의 합의에 의해 발행총액을 결정하고 IMF에서의 출자할당액에 비례하여 배분되어 특별히 인출할 수 있는 권리는 갖는 것이다.
신수연 기자 02shinso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