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축제로 학교가 떠들썩했다. 나 또한 그 떠들썩한 축제를 즐겼다. 맛있는 음식들을 양손에 가득 들고 돗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었고 학우들과 학교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은 외대학보 사람들과 함께였다. 값비싼 음식도 아니었고 편안한 의자도 없었지만 그 날이 행복했던 건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난 새로움을 즐기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내겐 큰 도전이다. 그럼에도 외대학보에 지원할 땐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동안 고민하다가 놓쳤던 다른 기회들을 생각했다. 이번에도 고민만 하다가 도전조차 안 해보고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외대학보 수습기자에 지원했다. 조금만 더 고민했다면 지원 시기를 놓치고 이후에도 매 학기 수습기자 모집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고민하길 반복했을 것이다. 1차 지필 과제와 2차 면접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선발 과정에서 내 부족함을 스스로 느꼈기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외대 학보 합격 문자를 받고선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선물을 받았을 때와 같이 놀랐고 감사 했다.
외대학보에서의 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으로 1070호 학술 기사를 쓰게 됐을 땐 취재원을 통해 인터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언제까지 답장을 기다려야 하는지, 답장이 없어 다른 취재원에게 연락했다가 인터뷰가 중복으로 진행되면 어떻게 일을 수습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때 편집장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내게 친절히 알려줬다. 지난 1071호 마감도 쉽지 않았다. 기사의 주제를 정했지만 인터뷰를 거절당해 마감을 준비하던 중간에 주제를 바꿔야 했다. 마음이 안 좋았던 그 때 차장 선배와 105기 동기들이 내 옆에서 위로를 해줬다. 그들이 있었기에 다시 힘을 얻어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1072호를 준비하면서도 더운 날 캠퍼스를 돌 아다니며 인터뷰를 함께 해준 부장 선배 덕에 인터뷰를 잘 마쳤다. 밤샘 마감을 할 때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이라도 붙였지만 국부장단은 밤을 꼬박 새우며 여러 차례 피드백을 해줬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내 부족함과 미숙함은 △105기 동기들△차장들△ 국부장단의 도움으로 가려질 수 있었다. 기사의 바이라인은 내 이름 하나로 나가지만 그 기사는 결코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라니, 문득 외대학보 모집 공고문에 쓰여 있던 문장이 떠올랐다. ‘좋은 사람들과 소중한 추억’. 내가 외대학보 지원을 오래 고민하지 않았던 건 어 쩌면 이 한 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밤을 새우며 마감을 진행하기에 모두가 힘들어도 우린 서로의 소소한 말 한마디 에 눈물 나게 웃는다. 난 오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힘겹지만 그에 비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