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 노벨 문학상은 ‘아 니 테레즈 블랑슈 에르노 (Annie Thérèse Blanche Ernaux)’(이하 아니 에르노) 에게 돌아갔다. 아니 에르노는 1974년 자전적 소설인 ‘빈 장롱’으로 등단한 이후 1984년 작품 ‘자리’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규정했다. 실제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낙태 수술을 받은 경험을 작품 ‘사건’에서 서술했고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쓴 일기를 모은 ‘외적인 삶’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 14권은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는 각 시대의 사실적인 기록물로 남아있다. 이처럼 아니 에르노에게 글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그녀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코뮌 릴본(Lillebonne)에서 태어나 식료품 가게와 술집을 겸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빈곤했던 그녀는 사립학교에 입학하면서 가난한 자신의 부모와 중산층인 동급생의 부모의 생활방식을 비교하며 처음으로 열등감에 빠진다. 그녀가 이 시기에 겪었던 △수치심△ 열등감△질투 등의 감정은 향후 그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 친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여러 작품을 꾸준히 발간 했고 1991년엔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편글 ‘단 순한 열정’을 발표한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평단과 독자들은 큰 충격에 빠진다. 불륜이란 소재가 파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 또한 지나치게 솔직하고 선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터부시되는 민감한 주제를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내 날카롭게 지적했 단점에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단순 한 열정’은 발행 당시 이성 간의 정신적 유대나 소통 없이 원초적 인 욕정만을 기술했단 이유로 노출증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했 다. 이러한 평가에도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을 부끄러워하지 않 았다. ‘단순한 열정’에서도 서술하고 있듯 그녀의 글쓰기는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인 노출증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니 에르노는 누군가 자신이 경험 했던 일을 실시간으로 보길 원했던 것이 아니고 그저 겪은 일을 글로써 기록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읽는 독자는 그녀가 작품 속의 일을 겪고 난 한참 뒤에 책을 읽게 되거나 아예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도덕적 판단은 유보하는 것이 좋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녀의 기록물을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게 된다. 그녀가 도덕적인 반성이나 후회 없이 솔직하게 글을 썼듯이 독자도 도덕적 판단은 잠시 내려두고 그녀의 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아니 에르노의 글 안에 담긴 솔직함과 용기를 느껴보길 바란다.
양진하 기자 04jinh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