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Christmas)를 앞둔 아일랜드(Ireland)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거리의 장식 불빛처럼 따뜻하고 고요한 일상을 보낸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모른 척하는 진실이 단단하게 얼어붙은 그곳에서 한 남잔 조용히 고갤 든다.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은 그런 조용한 고개 듦에서 출발한다. 화려한 갈등이나 격렬한 대립은 없다. 대신 이 작품은 공감과 윤리적 감수성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공정함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펄롱(Furlong)은 석탄 배달을 하며 다섯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크리스마스이브(Eve) 아침에 한 수녀원의 석탄 저장고에서 맨발의 소녀를 발견한다. 펄롱은 얇은 잠옷 하나만 걸친 채 감금되어 있던 소녀를 못 본 체할지 혹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갈등한다. 펄롱의 주변 사람들은 당시 만연한 사회적 억압을 말하며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른 척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펄롱은 소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펄롱은 큰소리를 치거나 세상을 향해 외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소녀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수녀원을 나선다.
하지만 바로 그 침묵 속에 담긴 움직임이 이 소설의 중심이다. 펄롱의 행동은 거창하지 않지만 그 속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과 그것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결단이 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한 여성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자신의 기억은 펄롱에게 책임감을 남겼다.
또한 소설의 아름다움은 펄롱의 용기를 영웅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는 데 있다. 그는 두렵고 망설이고 끝없이 흔들린다. 아내는 수녀원을 건드리지 말라고 조언하고 마을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펄롱은 그 무게 속에서도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펄롱의 용기 있는 행동은 누군가를 위한 결단이 아닌 자신 안의 침묵과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내면의 선택이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고통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 그 자리는 때로 아주 작고 사적인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펄롱처럼 말 없는 연민과 작지만 용기 있는 실천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일 수 있다. 우리는 말하지 않고 외치지 않아도 공정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 여정은 거대한 구조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눈앞의 작은 불의에 응답하는 감정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구해온 것들은 그렇게 작고 따뜻한 것들이었다.
김민서 기자 09kimminse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