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케냐는 공통점보단 △대륙△문화△인종 등과 같은 차이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케냐의 문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 그건 20세기에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케냐는 1884년 베를린 회담 이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됐다. 독립운동과 영국인의 탄압이 반복되다 1963년 12월 12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는 케냐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영국의 리즈대학교(University of Leeds)로 유학을 갔다. 당시로선 엘리트층이라 불릴 수 있는 위치였지만 자국의 독립 이후 기존의 제국주의 세력과 더불어 이에 가담한 흑인 기득권층에 반발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들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쓰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1964년 집필된 책 ‘울지 마, 아이야’다.
소설은 1945년 무렵 ‘은조로게’란 아이가 부모님으로부터 학교에 가도 된단 허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은조로게는 교육 과정을 무사히 수료해 흑인 사회 발전에 기여하겠단 꿈을 품게 된다. 그러나 이 목표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산산이 무너진다. 흑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시위에서 은조로게의 아버지 ‘응고토’가 백인 지주 ‘하울랜드’ 밑에서 일하는 흑인 ‘자코보’를 해코지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응고토는 실업자가 되고 은조로게 집안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이 시위는 백인과 이들 밑에서 일하는 흑인에 대한 무력 투쟁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자코보가 은조로게의 형에게 살해당한다. 이에 분노한 하울랜드가 응고토를 처형한다. 가세가 기운 상황에서 당장 수입을 얻어야 했던 은조로게는 인도인이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일을 해보지만 고용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해고당한다. 은조로게의 이런 비극적인 모습을 끝으로 소설이 막을 내린다.
이런 비극적인 내용과 결말은 당시 케냐 국민의 절망적인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작가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지배층이었던 백인보다도 백인 지배층에 가담한 흑인들이었다. 흑인 기득권층은 백인에게 권력을 위임받아 동포인 흑인들을 탄압했다. 피부색이 같은 이들이 피부색이 완전히 다른 이들의 편에 섰다는 점에서 배신감은 배가됐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우린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이 지배 체계가 잘 작동할 수 있었던 데엔 일본에 가담해 이득을 취한 친일파 덕이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케냐처럼 독립 이후 친일파의 과오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이처럼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는 대부분 비슷한 역사적 상처를 가지고 있다. 울지 마, 아이야를 읽으며 식민 지배를 당했던 케냐의 아픔을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해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장래산 기자 03raesa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