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선 안 되는 이유

등록일 2025년09월18일 00시1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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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게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은 일상이 되었다. “다름을 존중하라”는 구호는 익숙하지만, 실제 삶에서 이를 실행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하다. 미움은 그 공백을 파고드는 가장 쉬운 감정이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복잡한 맥락을 생략하게 하며, 나와 타인을 선명히 나눠 안심시키는 값싼 확신을 준다. 그러나 그 싸구려 확신이 남기는 대가는 결코 싸지 않다. 

 

미움은 타인을 겨냥한 화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둔탁한 추다. 미움은 판단을 단순화하고 사고의 길을 단축시킨다. 미움에서부터 오는 불호의 감정은 비판으로부터 비롯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비판은 문제를 정확히 겨냥하지만 미움은 대상을 통째로 지운다. 비판은 “그 행동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미움은 “그 사람 자체가 잘못”이라고 박제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편협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타인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첫째 이유다. 

 

또한 미움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왜곡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저마다 살아온 다양한 배경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한 장면으로 그를 판단하길 좋아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돼 급하게 나가다가 문을 쾅 닫아버린 동료△여러 일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답장이 느린 친구△막대한 책임의 압력에 짓눌려 예민해진 상태에서 회의에 참가해 공격적으로 보이는 상사를 떠올려보자. 물론 그런 맥락이 타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면책이 될 순 없다. 다만 맥락의 부재는 과잉형벌을 낳는다. 미움은 그 사람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유도하고 이는 곧 만연한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미움은 나와 너의 관계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 꾸리는 장(場)의 질서를 훼손한다.

 

그렇게 미움은 결국 서로의 ‘가능성’을 말려 죽인다. 인간은 완성본이 아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동일하지 않다. 우리의 △선택△습관△언어는 지속적인 사회적 교류 속에서 그 맥을 잡아 나간다. 그러나 미움은 그러한 사회적 교류를 방해한다. 이는 결국 개인의 변화와 성장을 가로막는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는 진부한 문장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그렇다면 미워하지 않기 위해선 우린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언제든지 상대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청자의 자세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줄 수 있는 배려심을 갖추는 것 그것이 ‘미움’이란 편협한 사고로의 매몰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결국, 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선 안 되는 이유는 도덕적 훈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실용의 언어이자 생존의 기술이다. 미움이 가득한 공동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으며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나아간다. 미움을 덜어낸 공동체는 다투더라도 고치는 법을 안다.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은 서로를 떠나지 않게 한다. 떠나지 않는 사이, 비판은 견고해지고 비난은 줄어든다. 그 견고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나아간다.

 

오늘의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당신들은 미움을 잠시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는가. 당신들은 느리고 번거로운 이해의 노동을 택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고쳐 쓸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꺼내 들 준비가 되었는가. 

 

 

이승원(외대학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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