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개최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하 카타르 월드컵)’은 1930년 이래 처음으로 중동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인 만큼 큰 관심 속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개막 전부터 노동자와 성 소수자의 인권 침해 등 여러 인권 문제가 발생해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이러한 문제들은 월드컵 개막 후에도 해결되지 않아 대회 진행에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카타르 월드컵 이면에 존재하는 인권 문제를 살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노동자 인권 침해
지난 2010년에 2022년 월드컵 개최지가 확정된 이후 카타르는 12년간 이번 월드컵을 준비했다. 카타르는 인구가 300만 명도 되지 않는 국가이기에 월드컵 기반 시설 건설을 위해 많은 이주 노동자를 건설 현장에 투입했다. 180만 명에 달하는 인부들은 △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스리랑카△인도△케냐△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월드컵이 카타르의 수도 도하(Doha)를 중심으로 인근 5개 도시의 8개 경기장에서 치러지기로 예정돼 있었기에 경기장과 훈련장 건설뿐만 아니라 △도로△상하수도△숙박시설△통신시설 등 지원 기반 시설 구축까 지 동시에 진행됐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서 이주 노동자의 인권은 보장 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지난해 발표한 성명서에서 2014년에 카타르 월드컵 공사가 시작된 후 지난해까지 사망한 이주 노동자가 40명이라고 발표했다. 40명 중 37명이 심장마비 등 업무 외의 사유로 사망했고 작업 도중 숨진 노동자가 3명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하산 알 타와디(Hasan Al Tawadi)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카타르 월드컵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이주 노동자가 400 명에서 500명 사이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카타르에서 50명이 업무 도중 사망했고 500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3만 7,600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번 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된 이후 이주 노동자 6,500명 이상이 카타르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 23일에는 ‘비즈니스와 인권자원센터 (BHRRC)’가 2016년 1월부터 이번 해 11월까지 카타 르 월드컵 준비 기간 동안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 및 학대가 최소 63건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각 기관마다 내놓은 통계에 차이가 존재하지만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망한 이주 노동자가 40명뿐이라는 FIFA의 발표 내용과는 모두 대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이유로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 꼽힌다. 최대 50도까지 치솟은 중동의 무더운 날씨에도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식과 잠자리를 제공 받지 못한 채 장시간 일할 수밖에 없었 다. 경기장 건설 기간 당시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 (dailymail)은 “근로자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서 충분한 수분 섭취와 적절한 수면 시간 등 기본적인 권리 를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카타르는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이주 노동자에게 하루 8.3파운드(약 1만 3,514원)의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를 지급했다. 또한 ‘카팔라 제도’와 같이 고용주의 승인을 받아야만 노동자가 이직할 수 있는 반인권적인 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된 후에도 이주 노동자에게 이를 적용하는 등 매우 열악한 수준의 노동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 단체 ‘이주자 권리 프로젝트’는 카팔라 제 도가 명목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부분적인 영향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에 대한 이슬람 율법 적용
세세계적인 축제 월드컵의 개최국인 카타르가 성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카타르는 헌법상 이슬람교가 국교로 명시돼 있는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동성애는 불법이며 적발될 시 7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경우에 따라 사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카타르 월드컵 개막 전 유럽의 △네덜란드△덴마크△독일△벨기에△ 스위스△웨일스△잉글랜드 총 7개 국가 대표팀 주장들은 성 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이는 대회를 앞두고 각종 인권 논란을 부른 카타르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자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한다는 뜻으로 네덜란드가 시작한 ‘원 러브(one love)’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FIFA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무지개 완장을 착용할 경우 옐로카드를 부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지난달 21일 유럽 7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무지개 완장을 차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럽 7개국 축구대표팀은 “복장과 장비 규정 위반에 적용되는 벌금을 낼 준비는 돼 있었지만 선수들이 옐로카드를 받거나 경기장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할 수는 없었다” 며 “FIFA의 전례 없는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선수들의 무지개 완장 착용 논란이 이어진 가운데 관중들 또한 무지개 의류 착용이 금지됐다. 경기장에서 미국과 웨일스의 경기를 관람한 전 축구선수이자 FIFA 평의회 후보였던 로라 맥칼리스터(Laura McAllister)는 보안요원 지시에 따라 무지개색 모자를 벗어야 했고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은 미국 기자가 경기장에 출입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외국인에게도 이슬람 율법을 적용한다는 점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또 다른 논란 지점이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서는 공공장소 에서의 주류 판매 및 음주가 금지돼 있다. 예외적으로 이번 월드컵 기간 에만 경기 시작 전후로 경기장 인근 지정 구역에서 맥주를 팔아 조건부 음주를 허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카타르 정부가 계속해서 맥주 판매 반대에 대한 압력을 넣었고 결국 FIFA는 개막 이틀 전인 지난달 18일에 맥주 판매 금지 결정을 내렸다. 음주 문제를 제외하고도 카타르 월드컵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남성과 여성이 어깨부터 무릎까지 옷으로 가려야 한다는 복장 규정 또한 문제가 됐다. 카타르가 외국인 복장 규정을 따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FIFA는 카타르 월드컵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복장에 유의할 것을 강조했다. 카타르 정 부 또한 월드컵 개막식 전 공식 홈페이지에 공공장소에서는 무릎과 어깨가 드러나지 않는 복장을 장려한다고 알렸다. 여러 논란이 일자 잔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 FIFA 회장은 월드컵 본선 출전국들에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축구가 이념적, 정치적 싸움에 끌려가게 두지 말자”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유럽 10개국 축구협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인권은 보편적이고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고 답했다.
◆인권이 보장되는 월드컵을 위해선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세계 모든 인구의 화합을 도모하는 월드컵 본연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다수의 나라에서는 보이콧(boycott)을 진행하거나 항의 의사를 표했다. △독일△스페인 △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은 월드컵 거리 응원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출전국의 항의 표 시도 잇따랐다. △덴마크△미국△잉글랜드 대표팀은 특별한 유니폼 및 완장 착용 등으로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항의의 표시를 나타냈다. 덴마크 대표팀은 평소에 입는 붉은색과 흰색 유니폼 이외에 사망한 이주 노동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검은색 유니폼을 제작했으며 미국 대표팀은 성 소수자의 포용을 촉구하자는 의미로 대표팀 유니폼의 문장 한 줄을 무지개색으로 교체했다.
지난달 24일 유럽연합(EU) 의회는 카타르 월드컵 준비 중 인권 침해를 겪은 노동자와 사망한 이주 노동자 유족에 대한 보상을 FIFA에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EU 의회는 카타르 당국을 향 해서도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 노동자 의 부상과 사망에 대한 전면 조사를 촉구했다. 아울 러 이번 결의안에는 카타르의 성 소수자 커뮤니티 탄압 관련 보도 내용을 규탄하는 내용도 담겼다. 비판이 계속돼서 제기되자 지난달 25일 FIFA는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부터 무지개 모자와 깃발 의 경기장 반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가 무지개 완장을 차고 출전하는 것은 금지된 상태다.
카타르가 수많은 논란에도 침묵하며 월드컵을 강 행한 것이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의 일환이 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포츠 워싱이란 국가나 단체 가 스포츠맨십이 주는 감동을 이용해 인권 탄압 등 본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세탁하려는 행동 을 뜻한다. 노엘 무니(Noel Mooney) 웨일스 축구 협회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카타르 월드컵은 국가의 인권 침해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스포 츠를 이용하는 스포츠 워싱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해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하 베 이징 올림픽)도 스포츠 워싱 논란에 휩싸인 적 있다. 2008년 베이징에서 첫 번째 올림픽이 개최됐을 때 중국 정부는 올림픽 개최와 함께 자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해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다시 한번 개최됐지만 중국은 △사형 집행△소수민족 강제 수용소 운영 논란△억압된 표현의 자유 등의 인권 문제로 여전히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은 중국의 인권 실태로 인해 베이징 올림픽은 스포츠 워싱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어려웠다.
전 세계의 관중들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여러 국가를 아우르는 월드컵 본연의 취지에 맞춰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길 원한다.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대형 국제 스포츠 경기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되돌아보고 타협안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양진하 기자 04jinha@hufs.ac.l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