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H 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H 마트에서 배운 사랑의 언어

등록일 2025년10월01일 14시5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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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면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의 글이 마치 노래처럼 다가올 것이다. 슈게이즈(Shoegaze) 음악 위로 선명한 감정을 새겨 넣는 자우너의 재능은 책 ‘H 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에서 △가족△사랑△슬픔△음식이란 언어를 통해 고스란히 재현된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성장한 작가는 자신과 한국을 이어주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나는 여전히 한국인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마주한다. 이 책은 작가가 한인 식료품점인 ‘H 마트’와 한국 음식을 통해 어머니와의 기억을 복원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는 동시에 단순한 애도의 기록을 넘어 사랑의 방식과 기억의 가치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전한다.

 

책에서 독자의 마음을 가장 울리는 대목은 자우너가 어머니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는 창작자로서 자신의 성취와 어머니가 평생을 바친 양육과 사랑을 다른 층위의 것으로 여겼으며 자신이 청소년기에 어머니의 삶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고 솔직하게 회고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어머니의 예술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동치는 사랑’ 그 자체였으며 이는 노래 한 곡과 책 한 권만큼이나 세상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일이었음을. 어머니가 차려낸 따뜻한 밥상과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것들이 그 어떤 예술품보다 가치 있는 일이고 그 사랑의 가장 빛나는 증거가 바로 자기 자신이란 사실을 말이다. 사랑 없인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 그 위대한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자우너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사랑은 행위이고 본능이고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과 작은 몸짓들이 불러일으키는 반응이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갓 지은 밥을 퍼주고 좋아하는 반찬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행위다. 이 책에서 음식은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의 방식’ 그 자체다. 자우너가 H 마트의 식료품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이유는 진열된 상품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사랑을 생생하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신의 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1집 ‘저승사자(Psychopomp)’는 자우너가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며 2주 만에 완성한 앨범이다. 수록곡 ‘In Heaven’과 ‘Heft’ 등에서는 어머니의 부재가 남긴 상실감을 가늠하며 고통을 토해내기도 하고 타이틀 트랙인 ‘Psychopomp’의 마지막엔 “괜찮아”라고 자우너를 위로하는 실제 어머니의 음성이 담겨있다. ‘저승사자’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면 ‘H 마트에서 울다’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평범하고도 위대한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한 조각’으로 세상에 남아 있느냐고.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떤 ‘행위’로 기억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윤고은 기자 10goeu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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