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뮤지컬 영화 ‘위키드(Wicked)’는 브로드웨이(Broadway)의 성공작을 스크린으로 옮겨온 화제작이다. 존 M. 추(Jon M. Chu) 감독은 ‘오즈의 마법사’ 속에서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기억되는 엘파바(Elphaba)를 초록 피부와 강력한 마법 뒤에 숨은 한 인간으로 새롭게 그려낸다. 영화는 도로시(Dorothy)가 오즈에 떨어지기 이전 아무도 몰랐던 순수한 이상을 품고 살았던 젊은 엘파바의 시간을 따라간다.
쉬즈(Shiz) 대학에서 엘파바는 타인과는 다른 초록색 피부 때문에 외톨이로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억압받는 동물들을 도우려 했으나 세상은 그의 바람에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어렵게 만난 룸메이트 글린다(Glinda)와 엘파바는 자주 부딪히고 글린다와 타협해 인기를 좇는 삶은 엘파바에게 견딜 수 없는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엘파바는 자신의 재능을 마법사에게 직접 보일 기회를 얻게 돼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유일한 희망인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에메랄드(Emerald) 시티로 향한다.
결국 선망의 대상인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또 다른 기만과 마주한다. 자신이 그토록 존경했던 위대한 마법사는 사실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동물의 지성과 언어를 빼앗아 그들을 억압하는 음모의 배후였다. 또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Morrible)은 엘파바의 강력한 마법을 이용해 말하는 동물들을 영원히 침묵시키고 날개 달린 원숭이 군대를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강화 하려 한다.
모순적이게도 엘파바는 글린다와의 우정 속에서 조금씩 변한다. 착함의 기준이 흔들릴 때 그를 지탱해준 것은 세상이 자신을 사악하다라고 규정하더라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끝까지 지키겠단 결단이었다. 영화는 도로시의 물벼락이나 원숭이 군대 같은 외형적 장면들보다 엘파바가 마법사의 기만을 깨닫고 선택을 내리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결국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은 결과가 아닌 그 선택의 무게를 보여주는 피날레(Finale)다.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는 엘파바를 서쪽의 사악한 마녀를 타고난 악당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로 재해석했다는 데 있다. 영화 속 그녀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이며 권력 앞에서도 직설을 서슴지 않는 용기를 지녔다. 때론 그 솔직함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순진함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주변의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결점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신념의 증거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재능 있는 그녀가 거대한 권력의 기만에 맞서 ‘사악한 마녀’란 오명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적 상처와 외로운 싸움을 견뎌야 했는지를 공감 어린 시선으로 밀도 있게 따라간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큰 인정보다 나답게 만드는 신념 한 가지를 갖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또 편견 속에서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엘파바의 삶은 조용히 전한다.
이해봄 기자 11haebom@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