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춤’은 오까 루스미니(Oka Rusmini) 작가가 자전적 경험에서 얻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루스미니는 카스트(Caste) 계급의 최상층인 브라만(Brahmin) 계층이었으나 결혼을 하며 브라만 계층으로서의 사회적 신분을 포기한다. 인도네시아 카스트 제도는 상위 계층 여성과 하위 계층 남성이 결혼하는 것을 금기시했기에 이는 큰 결정이었다. 반면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하위 계층 여성과 상위 계층 남성의 결혼은 관습적으로 허용됐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이 소설은 모녀 두 세대 간 엇갈린 선택을 비추며 가부장적 카스트 제도를 문학적으로 비판한다.
스까르(Sekar)는 카스트 제도 내 가장 낮은 계급인 수드라(Shudra) 출신인 동시에 평생을 반역자 아버지로 인해 무시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사회적 신분을 높이기 위해 맹목적으로 브라만 계층의 남성과 혼인하려 한다. 이후 신분 상승에 성공한 그녀는 끄낭아(Kenanga)란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뿐 아니라 귀족 생활 방식을 모조리 새로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신분이 높아졌음에도 카스트 제도 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시댁에선 여전히 수드라 계급 출신이란 이유로 구박과 핍박을 받아야 했다. 반면 처가에선 관계를 끊어야 한단 이유로 어머니의 장례식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딸 뜰라가(Telaga)는 어머니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뜰라가는 부유한 브라만 계층이자 발리의 아름다움을 한몸에 담은 뛰어난 무희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특혜를 포기하고 최하위 계층 남성과 결혼한다. 뜰라가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으로 수드라 계층의 삶을 익히려 노력했다. 끝내 뜰라가는 ‘빠디왕이’라는 의식을 통해 수드라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소설이 “발리의 춤”인 이유는 스까르와 뜰라가가 발리 최고의 무희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전통 춤에 대한 묘사는 우아함을 뛰어넘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 춤을 육체적으로만 좇는 시선은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또한 이 소설은 카스트 제도와 성차별을 예술의 영역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스까르와 뜰라가가 결혼 전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과 결혼 후 새롭게 소속된 계층에 적응하기 위한 고된 과정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결혼 후 모녀 모두 어떤 선택을 하든 원망과 차별은 카스트 제도 내 남성이 아닌 여성만이 받았다. 따라서 “발리의 춤”은 이국적인 배경 속 여성에게 적용되는 족쇄를 드러낸다. 이는 우리에게 발리만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세계 전반의 성차별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를 묻는다.
송주원 기자 11ju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