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지 않는 시대에 쓰다

등록일 2025년04월02일 15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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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 신문을 하겠다고 마음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달 전 방중 교육을 마치고 수습 신문을 만들던 날 조판소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언젠가부터 ‘글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들린다. 한 줄 요약된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넘겨버리는 것이 익숙한 시대다. 스크롤 한 번에 뉴스가 쏟아지고 알고리즘(Algorithm)이 취향에 맞는 정보를 골라주는 세상에서 우린 점점 더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사 본문을 인공지능에게 읽게 하면 몇 초 만에 핵심 내용을 요약해 주는 세상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기사를 쓰고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잘 정리된 요약문이 나온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책조차 전자책으로 대체될 것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 시대에 신문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기자가 인공지능보다 나을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이며 나는 학보사 기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외대학보 정기자로서 처음 쓴 기사는 중국 스타트업(Startup)의 인공지능 딥시크(DeepSeek)에 관한 학술 기사였다. 그 기사를 쓰면서 든 생각은 “앞으로 기자란 직업이 정말 많이 필요할까?”란 것이었다. 사실 아직도 글쓰기에 있어 내가 생성형 인공지능보다 뛰어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보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인공지능보다 나을 수 있는 지점은 정보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능력이 아닐까? 인공지능은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할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민하는 것은 ‘아직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의 사견은 철저히 배제돼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만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사견이기에 기사를 쓰는 일은 어렵다. 거창한 사명감을 내세우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읽지 않는 시대에 내가 쓰는 기사가 누군가에게 읽히고 의미 있는 글이 되려면 결국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들이 학교 생활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외대학보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사를 쓸 때 “이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외대학보에서 세 번의 기사 발행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인터뷰 요청에 대한 응답을 받을 때 기쁨을 경험했고 내 손으로 직접 쓴 기사가 신문으로 인쇄돼 세상에 나가는 순간의 설렘도 알게 됐다. 신문으로 인쇄된 내 글을 처음 봤을 땐 묘한 책임감도 느꼈다. 단순히 나 혼자만을 위한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읽힐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진심이 담긴 글이야말로 누군가의 눈길을 머물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읽고 싶은 글’을 고민해 본다.

윤고은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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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 까일 기자 (2025-03-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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