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 까일 기자

등록일 2025년03월19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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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학보에서 처음 면접 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사람의 이야기에 가까이 가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선망하던 기자는 ‘슬픈 세상에서 기쁜 말’을 전하는 정혜윤 기자와 논리적인 문장으로 소설 같은 현실을 그리는 장강명 기자였다. 그러나 야심 차게 기획으로 제안했던 첫 기사부터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다. 사전 취재 허락을 받아야 한단 점을 미처 숙지하지 못해 제안서 제출부터 차질을 빚었다. 준비한 질문지에도 구조적 오류가 많아 충분한 분량의 내용이 확보되지 않았다. 결국 준비했던 첫 기사는 준기획으로 조정됐고 첫 번째 회의 다음 날부터 후속보도를 함께 준비했다. 기사 하나를 쓰는 과정이 이토록 복잡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던 나는 금세 의기소침해졌다. 후속보도 역시 마감일 전에 관련 취재원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사전 취재 허락 문제로 한 차례 난항을 겪은 터라 다시 요청하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한정된 정보로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고여러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겨우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완성도가 낮은 기사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내 문장에 전달력이 부족하단 사실도 깨달았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기만 했지 다수의 독자 눈높이에 맞춘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보 전달에만 치중할 경우 단편적 나열에 그쳤고 나름의 해설을 쓰기 위해선 사견이 개입될 수 있단 우려 속에서 항상 경계하면서 기사를 마무리 해야했다.

 

첫 번째 회의가 끝난 이후 다시 준기획후속보도 작성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보도를 맡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흔쾌히 했을 일을 나라서 못 하는 게 아닌가?’하는 자괴감 때문에 모두에게 미안해졌다. 잘하고 싶고 괜찮은 사람이고 싶단 욕심이 다른 학보사 구성원들을 괴롭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번째 마감이 끝난 뒤 끊임없이 ‘좋은 기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좋은 기사를 나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곱씹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사는 너무 높은 곳에 있었고 나는 한없이 낮은 곳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는 일밖에 없었다. 외대학보의 천방지축이 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걱정 없이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도망치지 않고 노력하기’뿐이다. 이번엔 자신 없단 핑계로 머뭇댈 시간도 없이 도망쳐버렸지만 앞으론 도망치고 싶지 않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성장하려면 끝없이 부딪히고 깨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라도 도전하며 배우고 싶다. 배우고자 하는 자에겐 반드시 행운이 오리라 믿는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버티고 있다면 첫 번째로 “그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지 점검하라”고 묻고 두 번째로 “그 성장통이 내가 원하는 미래를 가져다주는지 점검하라”고 한다. 나는 외대학보 활동을 통해 사람의 이야기에 가까이 가도록 성장하고 싶고 이 성장을 바탕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글을 쓰고 싶다. 글 뒤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나는 기자이기 이전에 글 쓰는 자이고 싶고 글 쓰는 자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이 과정에서 난관이 많더라도 내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전하고 또 도전할 것이다. 설령 ‘뒷담 까일 기자’가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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