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770년대, 한 청년이 남긴 편지가 유럽 대륙을 뒤흔들었다. 이는 주인공 베르테르(Werther)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로 괴테의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실려있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베르테르는 시골 마을에서 롯데(Lott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롯데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상태다. 베르테르는 감정을 포기하지 못한 채 현실과 괴리된 사랑 속에서 점차 스스로를 소진해 가고 끝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그의 고백은 결국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용기인가 무책임인가”란 물음을 던지며 이성과 절제의 가치를 중시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선다. 베르테르는 감정을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며 내면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가 규정한 적정한 감정의 경계를 넘어서고 자신의 슬픔을 끝까지 껴안는다. 그런 점에서 베르테르의 비극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감정의 존엄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그는 세상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감정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인물이다.
오늘날 우린 감정에 익숙한 시대를 사는 듯 보인다. SNS는 매일 수많은 감정의 파편을 쏟아내고 공감과 연대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깊은 감정은 ‘과하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슬픔은 ‘약함’으로 간주된다. 분노는 “너무 예민하다”는 말로 무력화되고 고통은 “자기 연민”이라며 가볍게 흘려보내진다. 이처럼 우린 감정이 어느 선을 넘지 않길 요구받는다. 베르테르의 고백은 이에 대해 조용히 반문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감정이 단지 사회적으로 규정된 사적인 감상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언어의 가능성을 말한다.
베르테르는 끝내 원하던 바를 얻지 못했고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사라졌다. 그러나 자신만은 끝까지 속이지 않았다. 그에게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흔히 말하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그였지만 그 안엔 타협하지 않는 진실이 존재했다. 감정을 외면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끝까지 껴안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베르테르의 고백은 우리에게 여운을 남긴다.
세상은 때로 감정을 사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사치는 어쩌면 감정을 외면한 채 사는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끝까지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향한 가장 조용한 저항이자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다. 감정은 약하지 않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김민서 기자 09kimminse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