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너진 세계에서 꿈꾸기’을 읽고] 말의 무게, 침묵의 책임

등록일 2025년05월21일 23시2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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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계에서 꿈꾸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쉽게 균열되고 무너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저자는 △나치 체제의 가해자△침묵했던 다수의 시민△홀로코스트(Holocaust)* 생존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전체주의가 어떻게 일상을 잠식하고 결국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주지만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진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인간은 인간에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 그리고 “내가 그 시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를 독자에게 묻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악마의 혀, 대중을 장악한 선동술의 대가―히틀러의 대변인, 요제프 괴벨스’였다.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단지 히틀러(Adolf Hitler)의 홍보를 맡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언어를 냉철한 전략의 도구로 삼아 대중의 감정을 조율했고 거짓을 반복함으로써 거짓을 믿음으로 탈바꿈시켰다. 분노를 선동하고 적을 설정해 증오하게 만들었으며 독재자의 권력을 사람들이 스스로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섬뜩했던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우발적인 선동이 아니라 철저히 체계화된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라디오△언론△영화 등 당대의 유력한 매체를 장악해 비판적 사고를 봉쇄했고 그 결과 ‘생각하지 않는 대중’을 만들어냈다.

 

이 장을 읽으며 ‘말의 무게’라는 표현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괴벨스의 사례는 말이 때론 총보다 더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언어는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세우고 그것이 단지 감정의 분출이 아닌 사회적 전략으로 활용될 때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진다. 만약 많은 이들이 침묵하지 않고 괴벨스의 언어에 맞서 ‘자기 언어’를 가졌더라면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으며 자문했다.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는 목소리들△타인을 향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언어△편을 가르고 적을 만들어내는 선동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가 아니다. 언론은 언어로 현실을 구성하며 때로는 한 사회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렇기에 말의 힘을 경계해야 하며 동시에 침묵의 책임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방향을 제시할 수도 파멸을 이끌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너진 세계에서 다시 꿈꾸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본다.

 

*홀로코스트(Holocaust):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이나경 기자 10leenagyeo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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