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 번역가(동유럽·폴란드어 90)동문은 16년 동안 올가 토카르추크(이하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이하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과 같은 여러 폴란드 문학을 번역하며 폴란드 문학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현재는 우리학교 폴란드어과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폴란드 문학 번역의 거장 최성은 교수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자.
Q1 대학 시절 최성은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지각도 종종 했고 연애도 했습니다. 이후엔 조교로 선발돼 학과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전공인 폴란드어를 좋아했지만 교양이나 부전공의 경우엔 과목별 호불호가 확실했습니다. 학점 높은 우등생은 절대 아니었어요. 다만 독서를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며 음악을 즐겨 듣는 학생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분야는 열정이 가득했는데 그렇지 않은 분야는 소홀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이 후회되기도 합니다.
Q2 폴란드어를 공부할 때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1990년대엔 폴란드어 책이나 신문을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따라서 주한 폴란드 대사관에서 공개한 뉴스를 찾아보며 폴란드어를 공부했죠. 또한 폴란드어 사전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학교에 초빙된 원어민 교수와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외국어 학습에 있어 저마다의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청각형 학습자(auditory learner)*입니다. 폴란드 영화를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한 후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 하며 공부했습니다. 또한 원어민 교수가 읽은 교재 본문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반복적으로 들었어요. 원어민의 △억양△멜로디△강세를 모방하며 큰 소리로 읽어보는 훈련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Q3 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와 번역가로서의 보람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폴란드 현대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아름답고 위대한 폴란드 문학이 여태껏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이에 원서를 못 읽는 저학년 학생이라도 한국어 번역본을 통해 폴란드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번역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출판사에 번역 제안서를 보냈고 번역이나 출판 작업을 지원하는 공모전에 응모하며 책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문학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햇수로 16년입니다. 그동안 훌륭한 문인의 작품을 번역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원작의 뛰어난 문학성 덕분에 부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독자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전공자가 많지 않은 폴란드 문학을 번역하며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번역가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작품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Q4 2012년도에 폴란드 정부가 폴란드 문학을 널리 알린 공로로 교수님께 십자기사 훈장을 수여 했는데요. 폴란드 문학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폴란드는 러시아나 독일과 같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수많은 침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폴란드 문학은 이런 수난의 역사 속에서 오히려 꽃을 피웠습니다. 문인이 나서서 문학을 중심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수호했던 것이죠. 여기에 폴란드 국민의 열정이 더해지며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풍부한 문학적 기반이 다져졌습니다. 그 결과 폴란드는 지금까지 다섯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문학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 12월 10일, 토카르추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때 수훈사를 낭독한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 대표는 “폴란드 문학은 유럽에서 독보적으로 빛나고 있다”며 “유럽의 교차로인 폴란드는 나아가 유럽의 심장이다”란 극찬을 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외래문화가 폴란드 문화에 접목돼 만든 융합과 재창조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Q5 201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토카르추크 작가가 선정됐습니다. 토카르추크 작가의 소설 ‘태고의 시간들’과 ‘방랑자들’을 번역하셨는데, 토카르추카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토카르추크 작가는 뛰어난 소설가라 언젠간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수상할 줄은 몰랐죠. 게다가 토카르추크 작가는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이기도 해요. 2006년 토카르추크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약속 했습니다. 지난해 ‘태고의 시간들’과 ‘방랑자들’의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13년 만에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토카르추크 작가처럼 인간적·예술적으로 멋진 작가의 번역가로서 저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Q6 번역한 책 중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첫 번째로 추천하고자 하는 도서는 쉼보르스카 시인의 ‘끝과 시작’입니다. 쉼보르스카 시인의 시를 접한 후 그녀의 작품에 매료됐습니다. 덕분에 폴란드 문학이 좋아져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단 일념으로 유학까지 다녀오게 됐습니다. 쉼보르스카는 세상 만물에 대해 끝없는 애정과 호기심을 보여준 시인입니다. 그는 틀에 박힌 생각이나 선입견을 거부한 채 대상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언어△풍부한 상징△간결하고 절제된 표현△따뜻한 유머를 좋아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도서는 토카르추크 작가의 ‘방랑자들’입니다. 100여 편의 다양한 글이 ‘여행’이란 키워드를 공통분모로 씨실과 날실처럼 정교하게 엮여 있습니다. 동시에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여행길에 오른 다채로운 인간군상을 보여줍니다. ‘방랑자들’은 인생에서 전혀 무관해 보이는 타인의 생이 때론 가느다란 실처럼 연결돼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어딘가를 헤매는 낯선 타인의 얘기는 낯익은 얘기처럼 불현듯 우리의 심장을 파고듭니다.
Q7 번역가를 꿈꾸는 우리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폴란드 문학의 경우 전문 번역가는 저를 포함해 서너 명에 불과합니다. 이에 굉장히 외롭고 많은 책임감을 요구합니다. 문학작품을 언어체계가 전혀 다른 외국어로 번역한단 것은 힘든 작업입니다. 원문에 충실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번역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제게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영국 철학자인 비트켄슈타인은 “네 언어의 한계는 네 세계의 한계다”란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언어를 알면 또 하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다양한 언어를 이해한다면 그 사람의 세계는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번역가는 세계의 지평을 넓혀 또 하나의 세계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청각형 학습자: 귀로 듣고 인지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 효과가 높아지는 유형
김연수 기자 100yeonsue@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