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배고픔에 맞서 싸우는 임형준 UN 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장을 만나다.

등록일 2020년03월16일 21시5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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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유엔 세계식량계획 로마본부 아시아 총괄공여관이자 ‘우리 함께 웃어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행복 나누기’의 저자 임형준(동유럽·루마니아어 90) 동문은 ‘배고픔’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UN 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장으로서 기아와 빈곤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자.

Q1 대학 시절 임형준 소장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창시절엔 별 볼 일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님들은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교수님께 과감히 백지를 제출하고 F도 여럿 받았던 학생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란 두 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방황을 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좁은 우리나라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보잔 마음으로 3년 반 동안 80여 개국을 다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는데 8년 넘게 걸렸지만, 세계의 현실을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제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Q2 루마니아어과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학교를 졸업한 것이 어떤 도움이 됐나요?

언어를 좋아해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중 동유럽 언어가 유망하단 선배의 달콤한 유혹에 루마니아어과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특히 루마니아어 학습이 라틴어가 뿌리인 △스페인어△불어△포르투갈어△이탈리아어를 배우는 데 유용하단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루마니아어뿐만 아니라 라틴계열 5개 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학교의 국제적인 분위기는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덕분에 저는 원하던 세계 일주도 할 수 있었고 항상 도전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Q3 지금 일하고 계신 UN 세계식량계획(이하 WFP)이란 곳은 어떤 일을 하나요?

한마디로 배고픈 사람을 돕는 곳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8억 2천만 명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어떻게 버틸지 고민하고 밤엔 굶주림에 배를 움켜잡습니다. 그 수는 세계 인구의 약 1/9에 달합니다. 안타깝게도 기아인구는 2014년 이후 계속 늘고 있습니다. WFP는 기아와 빈곤의 최전방에서 이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자립을 돕는 다양한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WFP는 1964년부터 1984년까지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배고프고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 제로 헝거(Zero-Hunger)*를 성취한 기구이기도 합니다.


Q4 WFP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현장에서 했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서아프리카의 기니 비사우란 곳에서 일했는데 △쿠데타△내전△대기근△난민 위기 등 수많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말 한마디△글 한 줄△하나의 행동이 모여 수많은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단 점이 매우 보람차고 뿌듯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무소에선 국내 정부나 민간 기업 등과의 협력으로 재원을 마련해 전 세계 30개국 이상을 돕고 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600만 명을 넘게 도왔어요. 내 앞에 배고픔으로 쓰러진 한 아이를 먹이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이를 직업으로 삼으며 600만 명 이상을 도울 수 있단 것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WFP는 우리나라의 배고픈 사람만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세계 곳곳에 태극기가 붙은 식량 포대가 전달됩니다. 이 모습이 무척이나 감사하고 기쁩니다.


Q5 기아가 발생하는 곳이 분쟁지역, 전쟁 국가 등이란 점을 미뤄봤을 때 활동도 쉽지 않으셨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가장 힘드셨던 점은 무엇인가요?

기니 비사우에서 정부 사람을 만나려고 했더니 출근을 하지 않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월급이 11개월이나 밀렸기 때문입니다. 나라 전체에 기름이 떨어져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집엔 전기와 물이 나오지 않는 등 우리나라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납니다. 때때로 식량을 나르는 트럭이 로켓포 공격을 받고 직원의 안전이 위협받기도 합니다. 온두라스에 있을 땐 제가 탄 차가 60미터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생명을 잃을 뻔했습니다. 또한 현장 일의 특성상 한 달에 절반 이상은 집을 비워 아내가 무척이나 힘들어했어요. 그러나 이런 노력 덕분에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고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단 데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Q6 WTF에서 ‘제로 헝거’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지난해부터 ‘제로 웨이스트, 제로 헝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지구상에 생산되는 식량의 1/3은 버려집니다. 어느 국가는 굶고 있는데 선진국은 식탁 위에서, 개도국은 △생산△저장△수송 과정에서 막대한 식량을 낭비합니다. 이러한 처리 비용이 연 750조가 넘으며 이 돈이면 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아 문제는 당장 해결이 가능하단 겁니다. 이런 현실에 착안해 만든 캠페인이 ‘제로 웨이스트, 제로 헝거’입니다. 이는 ‘개인은 먹을 만큼만 먹어 웰빙에서 다이어트까지 성공하고 식당은 음식쓰레기를 대폭 줄여 그 처리 비용 일부를 WFP에 기부’하는 1석 4조의 효과를 가집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대의 식품기업인 씨제이(CJ)와 시범사업을 했는데 실제 음식물쓰리기가 30% 이상 줄었습니다. 또한 준비했던 제로 헝거 메뉴가 모두 팔리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번 해는 더 많은 곳에서 시행할 예정입니다. 이 사업이 세계적인 모델이 돼 실제 세계 기아 퇴치를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Q7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20대에 세계 일주하며 가슴 아팠던 부분은 ‘인간의 고난(human suffering)’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절한 기아△빈곤△전쟁의 참화 등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아 없는 세상을 포함해 인간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일에 계속 기여하고 싶습니다.


Q8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길 꿈꾸는 우리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노트에 꿈을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터무니없는 꿈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5개 국어 구사△세계 일주△20대에 책 출간△세계 최고의 학교에서 유학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이 됐습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꿈을 △담대하게 꾸고△간절히 원하고△이에 끊임없이 도전할 때 반드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꿈은 나만을 위한 것을 넘어 세상을 위한 큰마음일 때 더욱 가치 있을 것입니다. 많은 후배분들이 ‘Something bigger than myself(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고민하고 도전하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은 먹을 만큼만 먹어 웰빙에서 다이어트까지 성공하고, 식당은 온실가스의 8%를 차지하는 음식쓰레기를 대폭 줄여 일부를 WFP에 기부하는 캠페인


김연수 기자 100yeonsue@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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