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을 끄는 건 나야’의 주인공 ‘클래리스’는 이란의 평범한 가정주부다. 아내를 배려하지 않는 남편과 엄마를 험담하는 아들 사이에서 클래리스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내조△육아△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기에 하고픈 일을 할 시간도 없지만 이에 만족한다. 하지만 ‘에밀’을 만난 후 클래리스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에밀과 문학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정을 교류한다. 또한 클래리스는 삶의 목적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후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얘기하거나 본인을 위한 일을 찾으며 엄마나 부인이 아닌 스스로의 색깔을 찾아간다.
책은 이란을 배경으로 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이란은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성불평등지수가 높은 나라다. 1979년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게 된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크게 증가했다. 이란 정부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자전거 이용을 금하고 강제적으로 히잡을 착용하게 했다. 작가 ‘조야 피르자드’(이하 피르자드)는 일상생활 속 여성의 역할을 중심으로 책을 써 내려간다. 사실적인 문체와 담담한 표현은 혁명 이후 이란 여성의 일상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피르자드로 인해 이란 여성 작가의 활동이 활발해져 그는 이란 여성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가정 속 여성의 삶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이 여성의 가사노동시간보다 많은 국가는 없다. 퇴근 없는 집안일을 하며 모두가 잠자리에 든 후 불을 끌 때 가정주부의 하루 일과는 끝난다. 클래리스는 가족 중 누군가 해야 하는 불 끄기를 혼자 한다. 이는 소설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피르자드는 책을 통해 가족에 대한 여성의 헌신을 당연시하는 이란 사회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이란 사회에서 성평등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기에 책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독자는 책을 통해 이란 사회와 우리나라 사회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이 남성보다 약 4배 길어 가정 속 여성의 역할이 가사 노동으로 한정돼있다. 책을 통해 독자도 일상 속 성평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현익 기자 01hyuni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