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우리는 보고 또 본다. 모두가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 휴대폰의 작은 창 안에는 모든 세계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과연 옛 사람들은 어떤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가장 낡고 오래된 창은 단연 최초의 시각 매체인 회화일 것이다. 회화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됐고 문자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소통의 체계를 갖추어 왔다. 그러나 늘 미술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인이 생각하는 미술 작품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굴벽화는 미술관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그림처럼 향유나 감상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사냥을 나가기 전 풍족한 포획을 기원하며 그 그림들을 자신들의 거주지인 동굴에 남겼고 동물 그림들을 향해 창과 활을 쏘아대며 마치 그 포획물들이 실제인양 가상 현실을 즐긴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자신의 손 안에 있는 휴대폰 속 각종 게임들에 탐닉하고 있는 모습은 이처럼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실제와 염원을 의도적으로 혼동하고자 했던 선사시대 인류의 유전자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회화의 기원은 기능적 차원을 떠나 결국 인간의 근원적 본성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의 역사 또한 인간의 본성 및 정신의 변화 과정과 동일한 행보를 밟는다.
회화사에서 흔히 ‘양식’으로 번역되는 ‘스타일’은 본디 로마시대에 ‘글 쓰는 데에 사용되던 도구’를 일컫던 ‘스틸루스(stilus)’로부터 유래했다. 즉 스틸루스는 예술가의 정신과 물질적 산물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도구였고 현대적 의미로는 비단 문학 뿐만 아니라 전 예술의 영역에서 시대와 작가에 따라 변화하는 표현 방식을 지칭한다. 왜 어떤 시대에는 세계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았으며, 왜 어떤 시대에는 그렇게 표현했을까? 왜 자연의 모습은 변화하지 않았음에도 스타일은 꾸준히 변화를 거듭했는가? 그것은 아마도 동일한 자연을 ‘다르게’ 보아온 예술가들의 정신이 작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미술의 역사 속에는 각 시대의 정신과 신념, 작품을 제작한 예술가들의 독자적 스타일, 그들의 치열한 삶이 드러나 있다. 따라서 미술의 역사를 접한다는 것은 곧 인류의 역사와 마주하는 일이며 과거의 정신과 만나는 일이다. 역사를 탐색하며 사람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고대의 현인들은 이 경험을 진정한 친구를 대면하는 ‘우정(amicitia)’에 비유하곤 했다. 때로 우리는 그들의 용기와 혁명적 시도에 감탄하는가 하면 때로는 시대를 등진 비굴함에 지탄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그 어느때보다 역사에 대한 다각적 시선이 필요한 지금, 미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객관적 역사’란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본 강의명이 <서양 미술사>가 아닌 <서양 미술사 입문>이라는 점에 주목해 줬으면 한다. 강의명이 말해주고 있듯이 이 강의에서는 전문적인 미술사를 파고들기보다 미술사에 관한 기초 지식과,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이해 방식이 필요한 이유를 다룰 것이다. 그러므로 강의실의 문은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다. 이 강의는 무엇보다 입문자들을 위해 마련된 시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