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캣맘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캣맘이란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주민을 칭하는 은어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던 주민이 옥상에서 던진 벽돌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초기 캣맘 혐오에 의해 벌어진 살인이라고 판단되던 이 사건은 초등학생들의 실수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론은 캣맘에 대한 혐오로 논쟁이 일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 그들의 개체수를 늘리는 꼴이다, 아니다 그들에게 밥을 주는 것은 그들의 개체 수 증가에 관련 없다, 등 여러 의견이 오갔다. 대다수는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했다. 그럼 길고양이들을 모두 중성화시키고 다시 풀어주는 것은 어떨까? 터무니없는 비용이 예상되므로 차라리 그들의 먹이에 독을 타 죽이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더 합리적으로 들렸다.
가을, 노랗게 물이든 은행나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은행열매의 악취 때문이다. 은행나무의 악취는 암나무에서만 나는 열매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나무의 독한 향은 열매의 독성성분에나 나온다. 이 성분은 곤충과 공해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공해물질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악취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에 서울시는 암은행나무를 수거하여 불편을 해소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주말에 공원엘 갔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중 지친 몸을 달래려 의자에 앉아 한 숨 돌리던 차였다. 5살 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가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손에 든 빵조각을 비둘기들에게 뿌리며 “많이 먹어”라고 했다. 딴 짓을 하던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비둘기한테 먹을 것 주면 안 돼”라고 했다. 아이는 왜냐고 물었고 엄마는 비둘기는 더럽고 나쁜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더러워”하며 비둘기에게 발길질을 했고 엄마는 맞장구를 치며 손으로 비둘기를 쫓아냈다.
길고양이와 은행나무 그리고 비둘기의 생명을 논하는 자리에서 합리적인 비용이 언급된다. 도덕의 영역에 시장논리의 개입이 익숙해진다. 심각한 것은 우리는 이런 논의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불편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의 역할은 단순한 사실 전달에만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김정록 기자 91rock@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