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를 보고] 또 다시 재현된 젠더 불평등

등록일 2021년09월09일 22시58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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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영화는 부유층과 극빈층으로 구분된 두 가족의 만남과 파국을 비극과 희극으로 그려냈다.

영화 기생충엔 4명으로 이뤄진 두 가족이 등장한다. △아버지 ‘기택’△어머니 ‘충숙’△아들 ‘기우’△딸 ‘기정’으로 구성된 김씨네 가족과 △아버지 ‘동익’△어머니 ‘연교’△딸 ‘다혜’△아들 ‘다송’으로 구성된 박사장네 가족이다. 반지하에 사는 김씨네는 가족 모두가 일정한 소득이 없는 하류층이다. 반면 저택에 사는 박사장네는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상류층이다. 이처럼 두 가족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기우가 다혜의 영어과외를 맡게 되며 깊이 얽히기 시작한다. △기정은 다송의 미술 선생님으로△기택은 동익의 운전기사로△충숙은 연교를 돕는 가사도우미로 줄줄이 위장 취업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박사장네 가사도우미였던 ‘문광’이 저택으로 찾아오고 김씨네는 저택 지하실에 숨어 살던 문광의 남편 ‘근세’의 실체를 알게 된다. 문광네 또한 김씨네의 위장 취업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후로부터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문광네와 김씨네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싸우던 도중 문광이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저택에서 열린 다송의 생일파티에선 근세가 기우의 머리를 수석으로 내리찧고 기정을 죽인다. 충숙은 근세를 죽이고 기택은 동익을 죽인다. 이후 기택은 근세가 살았던 지하실로 숨고 기우와 충숙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일상을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 기우는 기택이 저택 지하실에서 보낸 모스부호를 해석하게 된다. 기우는 기택에게 자신이 훗날 그 저택을 매입할 테니 다시 만나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전 세계의 보편적 문제인 빈부격차를 미학적 완결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했단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영화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성 인지 감수성이 녹아 있다. 영화에 등장한 가부장적 남성 인물과 이에 순응하는 여성 인물이 전통적인 젠더 불평등을 재현하고 강화했기 때문이다. 박사장네 집에 잠시 가사도우미가 부재했던 당시 동익은 기택에게 “이제 큰일 났죠. 아줌마 없이 일주일만 지나 봐. 집안이 완전 쓰레기통 되지. 다송이 엄마가 원래부터 집안일에 재능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통해 여성이 집안일을 잘하지 못하면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그려낸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을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나타내기도 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지 못해 남동생을 질투하거나 기우에게 구애하는 다혜와, 남편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는 연교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여성을 표현한다. 여성의 신체를 다소 자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점도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화에선 여성 주인공인 기정이 신체를 노출하고 샤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단지 남성 관객의 흥미와 쾌락을 유발하기 위해 불필요한 노출이 가해지는 것이다. 영화 내 살해되는 여성에 대한 묘사도 비판의 대상으로 지적됐다. 봉준호 감독의 과거 작품에서도 여성 신체가 연출되는 방법은 논란이 된 바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여성 신체를 관음하고 살인자에게 카메라의 시점을 부여했단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영화 ‘마더’에서도 옥상에 여성 주인공의 시체가 널려있는 연출이 등장한다. 기생충 또한 여성인 기정과 문광이 남성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연출된다. 남성 감독이 여성의 삶과 몸에 구조의 폭력을 새기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잘 보이도록 스크린 위에 늘어놓았단 비판을 면할 순 없다. 스크린을 통한 여성의 타자화, 신체나 죽음에 대한 자극적 묘사가 아니라 섬세하고 예민한 여성성 묘사에 관한 고찰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임세은 기자 02seeu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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