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남은 수명을 알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이가 자신이 죽는 날을 알기에 쾌락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선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무지와 이에 따른 적당한 공포는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신에 대한 믿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선 신을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신 ‘디유’는 험상궂고 괴팍하다. 항상 아내를 무시하며 깔보고 화가 나면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디유은 심심하단 이유로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을 골탕 먹이며 스트레스를 푼다. 디유의 모든 권능은 자신만이 출입 가능한 방의 슈퍼컴퓨터를 통해 발휘된다.
디유의 딸 ‘에아’는 그런 아버지를 한심하게 여기고 증오한다. 이에 에아는 반항을 결심하고 몰래 디유의 방에 출입해 모든 인간에게 남은 수명을 알리는 문자를 전송한다. 수명을 알게 된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거나 무모해져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 에아는 새로운 성경을 만들고자 6명의 사도를 찾아 나선다. 사도들의 평범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들은 에아는 그들이 죽음 앞에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새 성경이 완성되자 세상은 재창조된다. 불행과 절망뿐이던 세상은 희망만이 존재하는 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
죽음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부여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이에겐 물리적 고통을, 주변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에겐 정신적 슬픔을 선사한다. 한편 누군가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도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자는 자신의 내면에 누구보다 솔직한 태도로 접근할 수 있다. 영화 속 6명의 사도 역시 죽음을 인지한 뒤에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다. 불행한 삶을 살아 온 그들을 구원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죽음을 한 발짝 뒤에서 관음했을 때 가능하다. 만약 죽음이 인간의 소관이라면 우리에게 종교나 철학은 없으며 성찰의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수명을 인지하고 삶의 길이를 선택하는 순간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시대가 지나 과학기술은 무한히 발전했지만 우린 여전히 죽음에 대해 무지하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어쩌면 영문 모를 죽음은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김민주 기자 01minju@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