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네 이웃의 식탁’를 읽고] 이웃 공동체의 재정의

등록일 2021년10월12일 21시1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인사합시다’란 공지를 본 지 오래다. 언제부터 이웃 간의 인사가 어색해지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옆집 사람의 눈을 피하기 바빠졌을까. 최근 전통적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며 이웃 간의 유대감은 약화됐다. 책 ‘네 이웃의 식탁’은 이 같은 맥락에서 공동체의 와해를 담았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네 가족이 꿈미래실험공동주택단지(이하 공동주택)에서 만나 일어난 일을 그린다. 정부는 저출산과 주택난 해결을 위해 저렴한 가격의 공동주택 단지를 조성해 젊은 부부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들을 모집한다. 경기도 외곽에 지어진 공동주택은 교통이 열악하고 기반 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네 가족이 공동주택의 규칙을 정해 생활해야 했다. 거리가 먼 유치원 대신 공동 육아를 하잔 ‘단희’의 제안으로 이들은 아이를 함께 키우기 시작한다. 공동 육아 과정에서 특정 가족이 지나친 역할을 맡기도 하고 한 아이가 다치는 등 누군가의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공동 분리수거장 관리 문제로 ‘효내’와 공동주택 엄마들 간의 말다툼도 발생한다. 재택근무를 한단 이유로 혼자 육아까지 맡게 돼 24시간이 바쁜 효내는 정해진 분리수거장 청소 날에 참여하지 못한다. 효내는 다음에 혼자 청소하겠다며 사과하지만 엄마들은 효내가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이를 비난한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인 세 가족은 공동주택에서 퇴소한다. 과거엔 살던 지역에서 잘 벗어나지 않아 이웃 간의 정을 다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배경도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지역에 오래 사는 사람이 드물다. 취직이나 신도시 개발과 같은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 살게 된 경우가 대다수다. 삶의 형태와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우린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이웃 간 거리를 현명하게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실시간 강의를 듣던 중 위층에서 1시간 넘게 들려온 소음으로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결국 경비실에 연락해 조용히 해달란 부탁을 했다. 5분 뒤 가구 위치를 변경하고 있다며 미안하단 말을 전해 들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웃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발생한 갈등은 그저 불편할 뿐이다. 최근엔 갈등 상황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이웃 간 친목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갑작스런 친밀함과 소통을 요구하는 건 과거의 시대상을 현대에 억지로 맞추는 것과 같다. 이웃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유대감이 필요하다. 생활 반경을 공유하며 오는 자연스러운 이해로 서로에게 한 발짝 가까워지길 기다려야 한다. 오늘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인사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되돌아오는 인사가 쌓이며 우리의 공동체가 한층 화목해지길 바란다.

 

 

정나윤 기자 02imyun@hufs.ac.kr

정나윤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추천 0 비추천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기획 심층 국제 사회 학술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