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란 단순히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넘어 글의 의미를 파악해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최근 한국교육방송공사(이하 EBS) ‘당신의 문해력’에 나타난 학생의 문해력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지난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조사결과 우리나라의 문해력이 해가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단 통계가 발표됐다. △계속되는 문해력 저하 논란△우리학교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와 인식△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보자.
◆계속되는 우리나라의 문해력 저하 논란
지난 3월 EBS에서 방영된 ‘당신의 문해력’이란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바 있다. 프로그램은 학교 현장에서 문해력 부족으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담아 시청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학생들은 ‘변호’나 ‘양분’과 같은 기본적인 한자어의 뜻을 알지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을 위해 가정통신문을 세 줄로 요약하는 선생님의 고충도 그려졌다. 성인이 된 후 보고서나 기획안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의 사례도 담겼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도 문해력 부족의 심각성을 새로이 인식하게 됐단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총 3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고 언론사는 이를 ‘사흘 연휴’라고 보도했다. 이를 접한 많은 이들이 사흘의 뜻을 혼동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했고,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또한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영화 ‘기생충’을 두고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란 한 줄 평을 남기자 화제가 됐다. ‘명징’과 ‘직조’란 단어가 지나치게 어렵단 반응과 이를 어려운 단어로 느끼는 게 문제란 반응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우리나라 국민의 문해력에 관한 각종 조사의 정량적 지표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만 15살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우리나라는 2006년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가장 최근인 2018년엔 6위까지 떨어졌다. 특히 교과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해력 수준이 낮은 학생들은 전체 조사 대상의 32.9%에 이르렀다. 청년층의 경우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이 한글날을 앞두고 기업 191개사를 대상으로 MZ세대 직원의 국어 능력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5%가 이들의 국어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비단 청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성인의 22%가 일상생활에서 어휘력과 논리력 부족으로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임이 밝혀졌다. 또한 지난해 국제성인역량조사(PIACC)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문해력은 △35세에서 44세는 평균 아래△45세에서 54세는 하위권△55세에서 65세에는 최하위권임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문해력 부족 원인 중 하나로 독서 부족을 든다. 스마트폰의 일상화가 독서를 멀리하도록 만들었단 것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매해 1월에 발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중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은 65.3%로, 20년 전에 비해 21.5%포인트 떨어진 역대 최저 수치다. 대학생 독서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14일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지난해 대학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재학생 1인당 대출 권수는 지난 2011년 8.3권에서 지난해 4.0권으로 감소했다. 황병익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하 황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읽어 지식을 쌓으려고 하지 않고 결국 책과 점점 멀어진다”며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화면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감각은 독서에 길들여지지 못한다”고 전했다. ◆우리학교 학생의 문해력 실태 문해력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이 읽은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재구성하는 능력△활용하는 능력까지도 포함된다. 문해력은 대학 생활에서 이뤄지는 △글쓰기△발표△토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임현찬 우리학교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는 “우리학교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제시된 논제에 따라 글로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과제를 잘 수행하는 편이지만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양면성을 제시해 논제의 폭넓은 이해를 보여주는 학생은 대략 5% 수준이다”며 “1,000자 혹은 800자 제한 같이 틀을 정해 논리적 결과를 요구하는 답안 작성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발표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에 대해선 “5% 정도의 학생만이 질문이 요구하는 바를 명확히 파악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대부분은 강의 내용을 그대로 읊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외대학보는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우리학교 학생의 문해력에 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53.3%의 응답자가 긴 호흡의 글을 읽는 데 거부감이 있다고 답했다. ‘감상문이나 보고서 작성 등의 과제를 선호하는 편인가’란 질문엔 60%의 응답자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우리학교 학생의 과반수가 긴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에 부담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학교 학생의 전반적인 문해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란 질문에 △보통이다△낮다△매우 낮다가 각각 △36.7%△43.3%△20%를 차지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해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책을 자주 읽지 않아서’가 36.7%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뉴미디어 이용의 증가해서’와 ‘디지털 기기의 보급이 보편화돼서’가 각각 33.3%와 26.7%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기타 의견엔 ‘공교육 시스템이 문해력 향상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해서’도 있었다. 김나현(영어·ELLT 18) 씨는 “우리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많은 사람이 글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동기 중에서도 스마트폰의 보급과 뉴미디어 이용의 증가로 짧은 글에 익숙해진 나머지 조금만 긴 글을 보내면 세 줄로 요약해달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편 설문조사 결과 ‘디지털 시대에 문해력이 필수 역량이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엔 86.7%가 ‘그렇다’고 답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문해력이 사회생활에 있어 꼭 필요한 능력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책이나 문서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와 ‘보고서 및 과제 등의 문서를 작성할 때’가 각각 41.7%와 27.7%로 가장 많았다. 또한 ‘문해력 향상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란 질문엔 △꾸준한 독서△신문 기사 정독 및 뉴스 신청△일기·블로그 등 단문이라도 글을 자주 써보기△꾸준한 국어 공부가 각각 △63.3%△23.3%△10%△3.3%를 차지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선 꾸준히 긴 글을 읽거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과정이 꼭 필요하단 인식이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나아가야 할 방안
문해력의 필요성에 공감한 많은 대학이 ‘독서와 토론’과 ‘글쓰기’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교양필수로 지정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중앙대학교 등은 자체 교재를 발간해 글쓰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학교 역시 자체 교제를 발행해 미네르바인문 강의를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국민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국가문해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문해교육센터는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 지원과 문해교육 통계 및 실태조사를 착수한다. 2006년부터 저학력과 비문해 성인 대상 문해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했으며 2019년까지 약 41만여 명이 교육을 받았다. 또한 기초 문해 수준 진단을 통한 국민 기초 문해 역량 강화를 위해 3년 주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문해 능력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다독과 글쓰기 연습이 문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윤준채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문해력은 아무리 사회가 디지털화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다.”며 “글을 제대로 읽고 써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는 활동을 많이 해야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 방법을 개인과 사회 각 계층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정봉비 기자 02jbb@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