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내 이름이 싫었다. 친구 ‘민아’도 ‘지연’이도 예쁜 이름인데 내 이름만 이상한 게 억울했다. 내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는 선생님은 없었고 매 학기 첫 시간엔 자기소개가 두려워 전날 잠을 설쳤다. 하루는 옆자리 짝이 내 이름으로 이상한 노래를 지어 날 놀렸던 적도 있다. 그날 울면서 어머니께 개명하고 싶다고 하자 어머니는 “특이한 게 아니고 특별한 이름이다”며 “특별한 게 얼마나 좋니? 세상에 하나뿐인데”란 말과 함께 내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때부터 내 이름이 좋아졌다. 70억이 넘는 인구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내 이름은 타인에게 더 쉽게 기억될 것이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의 말은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이 생각은 이름뿐 아니라 세상 모든 걸 다른 시야로 보게 했다. 고등학교 땐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대학에 가면 독서실 책상에서 같은 문제집만 하염없이 푸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다. 힘들었던 입시를 끝내고 3년간 바랐던 우리학교에 입학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대학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을 하고 싶어 들어온 학보사의 업무는 쉽지 않았다. 초반엔 화제성이 큰 주제만 골라 제안서를 작성했다. 글의 시의성과 당위성보단 익숙한 주제의 기사를 쓰곤 했다. 이런 기사들은 당연히 외대학보에서 다룰 가치가 부족하단 이유로 거절당했다. 진심을 다해 기사를 쓰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심했다. 그때 문득 ‘내가 특별함을 피해온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난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남의 가치를 좇기 바빴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특별함을 바랐던 것이다. 생각을 달리 한 후 처음 쓴 기사가 아동학대에 관한 기사였다. 진심을 다해 조사하며 취재했다. 기사를 위해 아동과 관련된 기관을 취재하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는 아동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최근에도 일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과잉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를 보호하는 법안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기사를 작성하며 처음으로 기자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회복지사는 “우리 직업군을 위해 이렇게 자세히 인터뷰를 한 학생은 처음이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간 겪었던 힘든 시간이 그 말 한마디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만의 특별함과 가치를 지키며 글을 쓴 이유가 눈앞에 있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부분을 눈여겨보게 된다. 가려졌던 사회의 민낯을 마주할수록 공포감이 커져만 갔다. 차별과 소외가 가득한 사회 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아주 조금의 변화는 만들 수 있다. 나만의 특별함을 지키면서 글을 쓰다 보면 내 손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