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의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일상에 당연하게 자리 잡은 엽기떡볶이, 불닭볶음면부터 근래 ‘마라 맛’까지 매콤한 음식이 유행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운맛을 선호하고 소비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모습에서 이런 경향이 발현된다. 우선 매운맛 소재 방송 화제성이 그 증거다. 인터넷 개인 방송은 허다하고 드라마 ‘펜트하우스’, ‘오징어 게임’ 등이 인기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도 다양한 맵기로 나타난다. 그런 목소리는 점차 세력을 키워 윤리적 당위를 논쟁 대상으로 도마에 올린다. 아동학대부터 노키즈존 논란이 있다. 노인 폭행부터 노인 빈곤이 있다. 여성 살해부터 여성 배제가 있다. ‘동물판 n번방’과 같이 잔인한 동물 학대를 유희로 여기는 이부터 길고양이 돌봄을 조롱하는 이도 있다. 실제 행동부터 말 한마디, 댓글 한 줄까지 여러 유형으로 표출된다. 정치권에선 이런 매운맛을 자양분 삼아 입지를 확보하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과거 행적이나 현재 행보가 맵다 못해 쓰더라도 매운 캐릭터가 잘 먹힌다. 그래서 갈등을 조장하고 매운맛을 판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매운맛을 찾는다. 주로 에너지가 고갈돼 힘든 상태이기 마련이다. 이땐 건강하고 소화가 오래 걸리는 샐러드보단 간편하고 자극적인 인스턴트 매운맛이 선택받는다. 마찬가지로 매운맛이 잘 팔리는 만성 고위험 스트레스 사회에선 복잡다단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을 고민하기보단 약자를 혐오하는 편이 쉽다. 최대한 적은 노력으로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가성비 해소법이 요구된다. 매운맛은 단기적 스트레스 해소엔 효과적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위장엔 치명적 위해다. 또한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면 더 강한 쾌감을 쫓기 마련이다. 매운맛은 많이 먹을수록 익숙해진다. 통각이 무감해져 간다. 그 과정에서 약한 부위가 상처받는다. 짜고 매운 현대사회지만 건강한 한 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비건식에 대한 관심이 늘고 비건 지향이라는 표현이 대두되고 있다. 여기엔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거듭나진 못해도 지지하며 노력하겠단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미래지향적 가치를 찾고 있다. 이처럼 우린 ‘지향’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매번 건강한 선택은 못하더라도 매일 매운맛으로 채우진 않을 수 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한정된 에너지를 운용하는 일은 버겁다. 그래서 매 순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혐오하지 않기를 택할 순 있다. 완전무결한 올바름이란 이상향이다. 이상은 지향해가는 것이다. 우린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차피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니 꼭 일관적이고 완전한 형태가 아니어도 어떠한가. 항상 해로움을 택하는 극단적 방식의 끝은 자멸이다. 매 끼니를 매운맛으로만 때우진 말자.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가 된다.
허지나(인문·철학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