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등록일 2022년03월03일 22시5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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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9일 우리나라의 향후 5년을 책임질 중요한 선거가 예정돼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청년층의 화두는 ‘공정’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언급하며 새 정권의 포문을 열었다.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정의를 보장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회가 평등하지 못했던 사건들에 분노했다. 청년들은 전 민정수석의 딸이 과거 서류 조작을 통해 의대에 입학한 사실이 알려지자 광화문으로 달려가 시위를 했다. 유력 국회의원의 자녀가 대기업에 특혜 채용되자 마찬가지로 분노했다. 정부는 서둘러 기업 입사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고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위해 수차례 교육과정을 변경했다. 기회가 평등해야 사람들의 분노가 줄어들고 공정한 사회가 도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의 저변에는 능력주의가 깔려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그에 마땅한 최선의 결과를 안겨주는 것. 능력을 인정해주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를 해주면 모든 게 공정해진다는 능력주의 신화는 얼핏 보기에 마땅하고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만 고려되는 사회는 또 다른 불공정을 낳는다. 평등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기회들은 사실상 우리 사회의 소수만 제대로 잡을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전체 취업 시장에서 소수의 엘리트만 들어갈 수 있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주로 적용된다. 대입제도의 공정성 역시 전체 수험생 인구의 약 10%도 되지 않는 인서울 대학을 타깃으로 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경쟁 속에서 아무리 기회의 평등을 외쳐봤자 승자는 ‘그들’이다. 그들만이 승자가 되는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양극화를 심하게 앓고 있다.    

진정한 공정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고려된 결과의 평등이 함께 추구돼야 이뤄진다. 존 롤스는 ‘무지의 베일’ 개념을 언급하며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가는 사회가 정의롭다고 말했다. 모두가 똑같은 양의 자원을 배분받긴 어렵지만 사회 최저층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고려하는 사회가 정의롭다는 것이다. 약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고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양극화는 해소된다. 아직 우리나라 사회엔 복지 사각지대에 갇혀 그 존재가 철저히 배제된 ‘있지만 없는 사람들’이 많다. 다가오는 대선, 청년들에게 기회의 평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과의 평등도 함께 고려되는 선택이 이뤄지길 바란다.

 

 

정봉비 편집장 02jbb@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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