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12월부터 국경 근처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서방 국가들은 조만간 침공이 있을 것임을 경고했다. 반면에 많은 전문가들은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침공에 따른 실익 등을 감안할 때 위세 과시 정도에 그칠 것이라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인근 지역의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려 강한 의지를 천명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다. 올림픽 기간 중 러시아군 일부가 철수하면서 외교적 타협이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지역인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이어서 우크라이나 진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독립했다. 인구의 78%는 우크라이나계인데 이들은 주로 서부지역에 거주하며, 친유럽 성향이다. 반면에 인구의 17%는 러시아계이며, 주로 동부지역에 밀집해 있다. 특히 2014년에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반도 지역은 주민의 60%가 러시아계이다. 그렇다보니 우크라이나에는 친유럽계와 친러시아계 간의 갈등이 내재돼 있고, 서방과 러시아 간에 갈등이 표출되는 장소가 돼버렸다. 이러한 갈등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하 나토) 가입을 시도하면서 증폭됐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 국가의 일원으로 경제·정치 통합에 참여해 번영을 꾀하고, 국가안보를 보장받기 원한다.
반면에 이러한 행보는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첫째,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을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한다. 동서독의 통일과 냉전이 해체되던 1990년 러시아는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구두약속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냈다. 반면에 1999년 △체코△폴란드△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연이어 가입하면서, 현재에는 구공산권 국가 중 14개국이 나토 회원국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거의 2,000km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고,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500km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상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에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있다. 러시아의 기원은 키예프 공국(879~1240년)인데, 몽골제국의 침입으로 동북부로 이주해 건설한 것이 모스크바 공국이며, 이후 러시아 제국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언어적△역사△문화으로 묶인 불가분의 관계로 본다. 셋째,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은 과거 소련시절의 영향력을 되찾는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역사적 동질성에 기초하여 우크라이나를 세력권 안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벨라루스 간 국가통합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안보적 위협이자, 러시아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방 국가들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셈법은 복잡하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해 러시아와 직접 대결할 계획은 없다. 자칫 더 큰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아 러시아에 대해 단교를 선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방이 갖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불안감은 우크라이나를 방위선으로 삼고자 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지만, 물리적으로 이 사태에 선뜻 개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의 역사적 인식과 비전이 군사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어떠한 이유이든 한 국가가 다른 주권 국가를 침공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약소국의 비애를 다시 깨닫게 하는 사례이다. 우크라이나를 통해 어렴풋한 자화상을 느끼는 것은 약국에 대한 연민일까, 아니면 비슷한 처지를 경험했던데 따른 동병상련일까. 경제안보 문제와 지정학적 대결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엇보다 지혜로운 외교안보 전략과 더불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유덕(LT학부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