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이 공개된 후 화제가 되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촉법소년에 대해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 당선인(이하 윤 당선인) 역시 이런 여론을 반영해 만 14세인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12세로 낮추겠단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소년범죄에 있어 연령 하향과 처벌 강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단 지적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촉법소년법△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의견 대립△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의 촉법소년법
우리나라의 소년법은 ‘19세 미만의 자’를 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년범은 연령에 따라 △범법소년(만 10세 미만)△촉법소년(10세 이상~14세 미만)△범죄소년(14세 이상∼19세 미만) 등으로 구분된다.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의 경우 어떤 법적 처벌이나 보호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촉법소년 또한 형사 책임 능력이 없기에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촉법소년은 △감호 위탁△사회봉사△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촉법소년 보호 처분은 1호부터 10호로 구성돼있다. 가장 약한 처분인 1호는 가해자를 집에 귀가시켜 보호자가 감호 위탁하고 2호부터 7호는 △보호관찰△사회봉사명령△시설 위탁 등으로 이뤄진다. 8호부터 10호는 소년원에 송치돼 보호감호처분을 받게 되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 채용과 입대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활동엔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소년심판 9화의 배경이 된 ‘용인 벽돌 살인 사건’은 우리나라의 촉법소년법 적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5년 10월 8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55세 여성과 29세 남성이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여성은 사망하고 남성은 두개골이 골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벽돌을 던진 A군은 당시 만 9세였고 범법소년으로 분류돼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건에 적극 가담한 B군 역시 당시 만 11세로 촉법소년에 해당돼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보호 처분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지난해 7월 3일에 발생한 ‘양산 몽골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14세 C 양은 밤 11시경부터 6시간 동안 손과 다리를 묶인 채 또래 학생들에게 폭행당했다. 가해자는 C 양을 폭행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해당 영상을 판매해 유포했다. 당시 사건은 경찰의 부실 수사 등으로 논란이 돼 지난해 12월 가해 학생들의 엄벌과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고 해당 글의 서명 수는 20만 개를 돌파했다. 하지만 가해 학생 4명 중 2명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이라 신상 공개는 불가능했고 그들에게 내릴 수 있는 처벌 또한 한계가 있었다.
이 두 사건 이외에도 △대전 렌터카 절도 추돌 사건△인천 여고생 집단 성폭행 사건△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등 촉법소년법의 테두리 안에서 청소년이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사례가 많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2017년 7,665건이던 촉법소년 처리 건수는 지난해 1만 2,029건으로 56%가 증가했다. 지난해 소년부에 넘겨진 1만 900여 명 가운데 약 80%는 △방화△성범죄△절도△폭력 등을 저질렀다. 이를 나이대별로 살펴보면 최근 5년 동안 범죄를 저지른 만 12~13세 소년은 3만 7,000여 명으로 만 10~11세의 5배이다.
◆다시 불붙은 촉법소년 논쟁
지난달 11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촉법소년 연령을 기존 만 14세에서 12세 미만으로 하향하는 소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20대 대선 후보들 역시 연령 하향 공약을 내놨다. 이재명 제20대 대선 후보(이하 이 후보)는 구체적인 나이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겠다 발표했고 윤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당 대표자 역시 촉법소년 연령을 14세에서 12세로 하향하겠단 공약을 내놨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찬성하는 입장은 소년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소년범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법과 정도가 성인의 범죄만큼 잔인하고 교묘해지는데 나이가 어리단 이유로 약한 처벌을 받는 것이 알맞지 않단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그에 따라 아이들도 조숙해지지만 소년법 개정은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9년 동안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년법이 제정된 1953년에 비해 아이들이 조숙하고 범죄도 흉포해지는 경향을 보여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고려할 만하다”고 전했다.
최근엔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단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이를 악용한 사례도 발생한다. 그 예로 지난해 12월 10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무인 모텔에서 음주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다. 무인 모텔을 운영하는 D 씨는 이들로 인해 망가진 기물의 교체 비용이 도합 420만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는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촉법소년임을 알리며 소리치기도 했다. 만 13세 범죄율이 유독 높단 점 역시 촉법소년 연령 하향 찬성의 근거로 삼는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촉법소년이 저지르는 범죄 중에서 만 13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65%다”며 “촉법소년의 연령 기준을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낮추는 것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조계 전문가들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우리나라 사법 체계 방향에 어긋나고 청소년 범죄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단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소년법 개정문은 소년사법 체계가 소년범의 교화와 선도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이하 천 판사)는 “어른들은 소년법으로 청소년을 지켜야 하고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도 촉법소년 연령을 만 12세까지 낮추지 말 것과 중범죄를 예외로 둬 낮은 연령 기준을 적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촉법소년의 연령을 조정하는 것이 청소년 범죄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단 점이다. 한영선 전 서울소년원장(이하 한 원장)은 형사처벌론 촉법소년의 강력범죄를 막아낼 수 없다며 회복적 사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원장은 “소년법원에 회복적 솔루션 위원회를 설치해 전문가들이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을 돕고 가해자도 소년원에서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판사 또한 소년범 사건 피해자의 상처는 가해자 처벌로만 치유되지 않고 가해자의 진정 어린 사과가 있을 때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이다.
◆나아가야 할 방향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과 함께 다양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소년범 교화 시설과 보호 관찰관이 부족한 것에 대해 공통적인 의견을 표했다. 정복연 소년법 전문 변호사는 “아이들이 제3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보호 시설을 비행 및 범죄 수준을 고려해 나눠야 한단 입장을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년교도소는 김천소년교도소 한 곳뿐이고 소년원은 △서울소년원(고봉중·고등학교)△안양소년원(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부산소년원(오륜정보산업학교) 등 10곳에 불과하다. 일본이 △소년 교도소 7개△소년원 52개△청소년 회복 지원 시설 18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소년범 교화 시설의 수가 상당히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4호나 5호의 보호 처분을 받으면 보호 관찰관이 소년범을 집중 관리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소년 보호 관찰관 1명당 담당하는 소년범들의 수가 47.3명으로 업무 부담이 많은 편이다. 이런 시설 과밀화로 인해 소년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청소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또다시 범죄를 학습하고 재범률은 증가한다. 천 판사는 “형사처벌이 늘면 소년 교도소는 과밀화될 수밖에 없다”며 “교도소 안에서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고 인권침해와 교정 역효과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소년법원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이에 가정법원과는 별도로 소년사건을 함께 담당하는 소년법원을 신설해야 한단 주장도 있다. △독일△미국△영국 등의 나라에선 소년법원을 따로 두고 법원이 모든 소년 범죄에 대해 처리하고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천 판사는 “소년 범죄에 대해 일본처럼 판사가 주도적으로 기소 여부나 소년보호사건 송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독립된 소년법원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촉법소년 범죄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공식 통계가 없단 점도 문제다. 지금까지 촉법소년 범죄의 현황을 알 수 있는 공식 통계가 부재해 소년법 개정이나 소년보호시설 확충이 쉽사리 이뤄지지 못했다. 배상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소년범죄 통계에 잡히지 않고 촉법소년에 관한 경찰청 내부 자체 자료는 우범소년을 포함한 수치여서 부정확하다”며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년법 개정이 증거 기반 입법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근 경찰청은 촉법소년 범죄 유형을 더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촉법소년 통계 항목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촉법소년 통계 항목이 킥스에 신설된다면 촉법소년 범죄의 분류를 더욱 세분화해 각종 정책 마련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촉법소년이 다시 화두에 오른 만큼 피해자와 소년범을 모두 고려한 방안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양진하 기자 04jinh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