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의 시선’을 보고] 군중은 침묵하지 않았다

등록일 2022년03월30일 19시4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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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의 시선’은 인도네시아의 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군인 장교 ‘하지 모하마드 수하르토’(이하 수하르토)가 공산당의 쿠데타를 진압한 후 인도네시아의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 100만 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65년 주인공 ‘아디’의 형 ‘람리’는 군사 조직에게 고문을 당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형이 죽은 지 40년이 되던 날 아디는 형의 죽음에 일조했던 이들을 찾아가 형과 관련된 과거의 학살에 관해 묻는다. 그는 열 명이 넘는 가해자를 만났지만 누구도 먼저 사과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중 몇몇은 과거가 자랑스럽단 듯 칼로 희생자를 죽이는 모습을 재현하기도 한다. 영화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이하 조슈아 감독)는 몇 년간 인도네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군부의 학살에 대해 증언할 피해자를 찾았지만 선뜻 나서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당시 다수의 학살 가해자가 현재 인도네시아의 권력층에 분포해있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여전히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에도 아디는 과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영화에 출연한다. 람리를 죽인 군인을 비롯한 모든 가해자는 폭력을 정당화하며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단 변명을 늘어놓는다. 당시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으로 대표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다툼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영화 속 군사 장교는 과거 학살에 대해 “민주주의만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원하는 바였기에 공산당을 모조리 죽여야 했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 역시 해당 사건이 인도네시아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란 사실을 암시한다. 인도네시아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인도네시아 군사조직이 강력한 무력을 통해 시민을 제압하는 모습은 1970년대의 우리나라를 상기시킨다. 두 역사의 공통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억압받은 국민이 목소리를 높여 변화를 이뤄냈단 사실 또한 유사하다. 1980년 5월 18일 우리나라 국민은 △계엄령 철폐△민주 정부 수립△신군부 세력의 독재 퇴진을 외치며 광주를 중심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1998년 5월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선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5월 18일에 일어난 두 시위는 민주화 개혁의 시작점이 됐다. 1987년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뤄졌으며 1998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대통령직을 내려놨다. 국민의 행동이 권력의 횡포를 막은 것이다. 침묵을 깨고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군중이었다.

 

 

김하형 기자 03hahyu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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