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죽음이 두려웠다. 평소 쉽게 잠들지 못했던 난 매일 밤 죽음에 관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단 것이 무서웠다. 처음엔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열심히 살아야 할까’란 무기력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는 곧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내 흔적을 세상에 남기자’란 결심으로 바뀌었다. ‘공익 실현’이란 긍정적 변화를 통해 내 흔적을 남기고자 다짐했다.
공익 실현이란 삶의 목표를 세운 후 앞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왕이면 내가 꿈꿔온 직업과 연관 짓고 싶었고 꼭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았다. 난 학창 시절 장래희망 조사에서 줄곧 기자를 써냈다. 그러나 당시 고된 입시를 치르던 나에게 기자는 학교 생활기록부를 채우는 명목으로서의 꿈에 불과했다. 기자란 직업을 막연하게 동경했지만 꼭 기자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당장 눈앞의 대학교 합격증이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학교에 입학한 후 영화 ‘베로니카 게린(Veronica Guerin)’을 보고 진정으로 기자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임에도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 ‘게린’의 모습에 많은 것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추운 겨울 무렵 외대학보에 지원했다. 학내 기자로 활동하는 것이 공익 실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족하지만 수습기자 선발에 열심히 임했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대학보 방중교육을 받으며 많이 위축됐고 자신에게 실망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 글쓰기 실력은 한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식견이 좁다고 느꼈다. 평소 글을 써본 경험도 많이 없었고 책을 자주 읽는 편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내 기자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나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외대학보 내의 다른 기자들과 함께 취재하고 마감을 진행하면서 경험이 쌓임에 따라 나에 대한 불신을 점차 극복해 나가고 있다.
외대학보 정기자로서 총장선거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 말미엔 지난해 이뤄진 총장선거에서 모든 학내 구성원의 입장이 동등하게 반영되지 않았던 점을 지적했다. 비록 기사를 쓰기 위함이었지만 처음으로 학내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알아봤다. 밤새 마감을 진행하며 몸은 점점 지쳐갔음에도 내가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했단 사실이 뿌듯했다. 또한 학내 구성원이 내 기사를 읽고 해당 사안에 대해 각자의 방향성을 설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느꼈다.
이제 막 외대학보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고된 여정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음에도 난 항상 기대에 차 있다. 당장 내 기사가 우리학교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비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면 나에겐 그 자체로 소중하다. 유명한 작곡가의 곡처럼 거대한 흔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기자로서 남기는 작은 흔적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난 이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