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한간호사협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제51회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국민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간호법 제정을 요구했다. 간호법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고위원회를 통과하며 제정이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의사단체 등 여러 의료 단체가 간호법 제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갈등 이 심해지고 있다. △간호사가 겪고 있는 고질적 문제△간호사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과 갈등 △간호법의 기대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또다시 제기된 간호사의 처우 문제
지난해 10월 한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며 간호사의 처우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사 결과 이 간호사는 직장 내 선배 간호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으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란 뜻을 가진‘태움’ 문화와 관련이 있다. 태움 문화란 교육을 명분으로 신입 간호사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가하는 규율을 말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업계에 종사 중인 많은 간호사 가 자신의 상황을 언급하며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했다. 또한 이들이 태움 문화의 증거로 제시한‘비밀유지의무 확약서’까지 공개돼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하단 사실이 공론화됐다. 송금희 전국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이하 송 사무처장)은 병원의 구조적 문제를 태움 문화의 원 인으로 꼽는다. 송 사무처장은“ 병원의 이윤 극대화에 묻혀 가려진 간호 인력 부족 문제가 태움 문화를 발생시킨다”며 태움 문화는 병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입사 초기의 간호사는 단기간 교육 후 숙련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업무에 투입된다”며 선배 간호사가 본인의 과도한 업무 외에도 후배 간호사의 일까지 신경 써야 해 갈등이 심화된다고 지적했다.
병원 측의 이윤 극대화로 인한 간호사의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간호사는‘ 온콜(Oncall)제도’에 따라 일하고 있다. 온콜제도는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이 신속하게 병원으로 복귀해 진료 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부터 30분 이내 거리에서 대기하는 것을 뜻한다.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이 제도는 의료진의 육체·정신적 노고에 비해 당직비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단 한계를 가진다. 더불어 병 원 크기에 따라 간호사에게 대기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병 원 측은 인건비 축소를 위해 당직제도 대신 온콜제도를 선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간호사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급상황을 대비하기 위 해 항상 병원 주변 반경에서 머물고 있다. 또한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간호사의 업무가 가중된 것도 간호사 처우 악화에 큰 영 향을 줬다. 앞서 언급한 태움 문화 피해자의 경우 입사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입 간호사였지만 그녀가 담당해야 할 환자는 23명이었다. 김소남 서정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대학병원의 간호사 1명당 적정 환자 수는 10명인데 실제론 40명까지 돌보는 경우도 있다”며 간호사의 업무 강도가 개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간호사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과 갈등
1944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의료인을 강제 징용하기 위해 의료령을 만들었다. 이는 1951년 국민의료법으로 이어졌으며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의 초석이 됐다. 그러나 1972년부터 간호업무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개선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정부에 건의하는 움직임이 발생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됐다. 지난 1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간호대학생의 국민청원이 올라 왔고 이에 동의한 국민이 일주일 만에 20만 명을 넘어서면서 화제가 됐다. 청원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간호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를 꿈꾸는 대학생이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우리나라에 의료법을 남긴 일본은 이미 1948년 간호법을 제정해 간호의 전문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언급해 간호법이 부재한 우리나라의 의료법 체계가 시대착오적이란 점을 지적했다. 이후 간호법 제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1인 릴레이 시위가 열리는 등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간호법 제정을 요구한 국민의 의견에 따라 지난 3월 24일 △국민의 힘△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여야 3당은 모두 간호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 지난 18일 간호법은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 통과 절차를 밟았다. 국회에서 간호법이 복지위를 통과 한 것은 최초이다.
간호법 제정 과정은 크게 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과 처우 개선 부분으로 진행됐다. 초기 간호법이 명시한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환자의 진료에 필요한 모든 업무’였다. 하지만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 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돼 입법부에선 많은 조정이 진행됐다. 의사협회는“ 의사의 처방만 있으면 어디서든 간호사가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다”며 조정을 촉구했다. 결국 통과된 간호법엔 기존 의료법과 동일하게 간호사의 업무를 진료 보조에 국한하도록 규정됐다. 현재 통과된 간호법에 대한 의료사회의 진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간호사 단체는 이번 간호법 통과가 간호사 환경이 개선되는 초석이 될 것이며 직업과 관련한 규정을 법으로 정확히 명시해 직업적 사명감을 가질 수 있단 기대를 전했다. 신경림 간호사협회 회장은“ 간호법은 초고 령사회 진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간호 수요와 코로나19와 같은 주기적 공중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다”며“ 간호법이 앞으로 확대될 간호 서비스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의사 단체는 의료인 5개 분야(△간호사△의사△조산사△치과의사△ 한의사) 가운데 간호사 관련 법안만 제정된 것은 나머지 의료인들을 차별하는 처사란 입장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은“ 다양한 보건 의료 직군이 함께 고생했으니 동등한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간호법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또한 지난 18일 국회 앞에서 1인 릴 레이시위에 참여한 송성용 의협 의무 이사는“ 간호법 제정은 코로나19 극복에 함께해 온 간호조무사와 의사 등 다른 직군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다”며 간호사의 처우개선은 간호사 단독법 제정 보단 의료법 개정 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간호사의 공정한 대우를 통한 기대
독립된 간호법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국가 중 △독일△미국△일본의 경 우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 중인 사안의 범위보다 더 넓은 범위를 포함 하고 있다. 독일에선 간호 교육을 규율하고 있는‘ Nursing Profession Act’가 지난 2020년에 제정됐다. 여기엔 △대학 간호교육△외국 전문 자격 인정△직업 간호교육 등에 대한 사항이 포함돼 있었고 △노인△아 동△일반 간호를 통합하고 교육 체계를 마련했다. 또한 연방법을 통해 △간호사△노인요양보호사△아동 간호사 관리를 하고 있으며 간호 지원 인력에 관한 사항은 각 주에서 관할하는 법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주별로 △간호사 면허△교육△직무 범위 등의 규정 체계가 서로 조금씩 달리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California)에선 △ 간호 교육△규정 범위△등록간호사위원회△징계 절차에 대한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48년 보건사조산사간호사법이 제정돼 △ 간호사△조산사△준 간호사에 대해서 규율하고 있다. 또한 간호사의 △ 인재 확보 촉진△양성△처우에 대한 법은 별도의 법률로 제정돼 운영되고 있다.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외국의 법들을 간호사의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전문성 있는 간호사를 양성하는 것에 힘쓰고 있단 것을 알 수 있다. 하워드 캐튼(Howard Catton) 국제간호협의회 최고경영자는“ 간호 법이 제정되면 간호 인력이 충원되고 동시에 경쟁력 있는 간호사를 양성할 수 있어 국민들이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 다”며 간호법이 의료사회와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병원 평균 간호사 수는 4.2명으로 이는 OECD 평균 간호사 수인 7.9명보다 약 2배 낮은 수치이다. 간호사를 적게 고용 하기 때문에 간호사들에겐 과중한 업무가 맡겨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 해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45.5%에 달한다.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간호사에게 법적으로 적정량의 업무가 정해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환자에 게 질 높은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파멜라 시프리아노(Pamela Cipriano) 국제간호협의회(ICN) 회장은“ 간호법은 환자의 안전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역량 강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간호법에 대한 우려사항 역시 고려돼야 한다. 의사 단체 측은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법안이기 때문에 보건의료 직군 간의 갈등이 유발될 수 있으며 현행 의료체계보다 간호법을 우선 적용할 수 있단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간호법 제정이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을 늘리는 방향이 돼선 안 된다며” “간호법 제정으로 인해 다른 직역에 차별이 생기는 부분은 없는지 고려 돼야 한다”고 전했다. 간호법이 공정한 의료사회 구축에 기여해야 하기 위해 다양한 의료계 구성원의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승연 기자 03seungy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