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울수록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있다. 아픈 역사가 그렇다. 책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이하 4.3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 책은 △소설가 ‘경하’△‘인선’△인선의 어머니 ‘정심’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경하는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들에 매몰돼 살아가고 매일 밤 악몽을 꾸며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서 인선과 그녀의 가족들이 사실 4.3 사건의 피해자였단 것을 알게 된다.
4.3사건은 1943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를 포함해 1947년 3 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과 미 군정 사이의 무력 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 한 사건이다. 1940년대 후반 당시 제주도의 상황은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고 미군정 당국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대흉년△미곡정책의 실패△실직난△생필 품 부족△전염병 등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 던 제주도민들은 반미 사상에 동조했고 7만 명 가까이 되는 제주도민이 공산주의 정당인 남로당에 가입하게 된다. 4.3사건은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으며 2만 5,000명에서 3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정심은 하루아침에 모든 가족을 잃고 언니와 단둘이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고 평생을 살아 간다. 그녀는 오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을 4.3사건 속에 머무 르며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고통 속에서 방황한다. 4.3사건의 유가족은 정심과 같이 끝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렸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족과 처음 가본 제주도는 내 기억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우연히 4.3사건을 다룬 또 다른 책인 ‘순이 삼촌’을 읽고 나서 제주도의 숨겨진 아픔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됐다. 너무나 참혹한 과거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제주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달라졌다. 여전히 제주도는 예쁘고 아늑한 섬이지만 그 안 깊숙한 곳에선 슬픔이 느껴진다.
책의 저자인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하가 인선의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눈 오는 산길을 헤맨 장면△인선이 전쟁 후 어머니 정심의 트라우마를 견디며 옆을 지킨 장면△정심이 오빠의 시체를 찾기 위해 노력해온 나날들 등 책 속의 모든 장면은 사랑이란 단어를 쓰지 않곤 표현할 수 없다. 모든 만남의 끝은 작별이기에 우린 살아가 며 여러 번의 작별을 거친다. 하지만 때론 작별을 미루고 미완성인 상태로 남겨둬야 할 때가 있다. 4.3사건 피해자와 유가족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한강 작가가 그랬듯 우리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과 작별하지 않고 기억을 온존하기 위해 애씀의 날들을 보내야 한다.
양진하 기자 04jinha@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