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첫째 의무를 다시 생각하며

등록일 2022년09월15일 16시31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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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개강을 앞둔 학교는 활기차다. 지난 몇 년 각자의 고립된 자리에서 견뎌낸 불안과 불확실성 대신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뭔가를 할 수 있 으리라는 희망이 지난 학기에 이어 더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리라. 뜸했던 동아리 모임도 시작되고 빈자리 많던 도서관도 학생들로 빼곡하다. 때마침 푸른 가을하늘에 구름이 예쁜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새로운 시작은 늘 고마운 일.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 기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본다.

이쯤에서 우리 각자가 학교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학부생은 학부생대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대로, 교직원은 교직원대로, 대학이라는 터에 함께 깃들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대학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저마다 어떤 대답을 할까.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 귀한 시간을 여기서 보내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하 고 기다리며 또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하는가.

대학은 한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고등교육 기관이다. ‘교육敎育하다’는 우리말 사 전에는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다’로 정의되고 있는데, 영어 ‘to educate’의 라틴어 어원 ‘educere/educare’를 보면 ‘bring out, rear, lead out, lead forth’로 뭔가를 끄집어내어 길러준다는 의미가 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잠재된 것을 발굴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첫째 의무인 이유다.

오늘날 대학의 역할을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는 정도로 축소하여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고 학생 또한 기업체의 일꾼으로 쉽게 대상화되는 시절에 교육의 첫째 의무를 기본에서 생각하는 것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사회에서 요청되 는 인재는 쉽게 가시화되는 수치적 측면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미래에 뭔가를 만들 어나갈 잠재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육철학의 관점에서, 산업인재 양산을 위한 수동적인 기관으로 대학을 보는 것은 교육의 의미를 충분히 발현하지 못 하는 격이 되기 쉽다. 그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의 변화를 추동해 나갈 씨앗 을 심는 공간으로 대학을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이 무엇에 중점을 두어 야 할지가 더 자명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겹의 위기 담론에 둘러싸여 있다. 기후위기는 최근 들어 생 존 자체에 대한 위기감을 실감하게 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가파르게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감소도 정말 심각한 문제다. 팬데믹, 식량위기 등도 국가별, 지역별 불평등을 더 여실히 보여준다. 박탈당한 자들이 더 가파르게 생존의 절벽으로 내몰려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민주사회의 이상 은 점점 멀어진다.

그러한 때 대학은 다양한 위기 담론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대안 공간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사례를 예로 들면,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폭거로 인해 문화적 다양성이 위축되고 인권이 제한되던 시절, 대학을 중심으로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연구소들이 많이 생겨났다. 대학이 진보 담론을 활달히 구축해 나간 과정은 학문과 교육이 정치적 폭압에 굴복하지 않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정치 영역 에서 권위주의가 커질 때 대학은 공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공부로 연결하여 사회의 위기에 답을 주는 공간으로 성장한 것이다.

대학을 산업인재 양산을 위한 기관으로 그 역할을 좁히지 말고 이 세계의 모순과 위기들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실천적으로 시험하는 공간으로 다시 바라볼 때, 대학 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교육의 첫째 의무, 즉 잠재력을 끌어내어 미래의 가치를 앞 당겨 실현하는 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많이 위축 되어 있다. 대학의 성장을 가로막는 재정위기도 문제고, 연구윤리와 학문의 투명성 을 둘러싼 문제들이 대학의 낯을 어둡게 만든다. 최후의 지식인이니 최후의 대학이 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러한 위기 담론 속에서 그 구성원인 우리도 잠재력을 끌어내는 공간으로서 대학의 가치와 의무를 잊고 위축되어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 이다. 우리 안의 소외된 이들을 계속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강의실, 사무실, 동 아리방에서, 하루의 일상 속에서 우리 각자가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가능성을 얼마 나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그 노력들로 새 학기를 새롭게 시작해 보 는 것이 어떨까.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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