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다. 분야별로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올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에게 돌아갔다. 늘 그렇듯 노벨상은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자기 길을 꾸준히 걸어 온 이에게 세상이 전하는 고마움이자 찬사다. 노벨문학상 또한 그 점에서 작가의 위대함을 줄 세우기 하듯 평가하는 상이 아니라, 우리가 잘 몰랐던 작가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
1940년에 태어난 에르노는 노르망디 작은 마을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부모님 아래서 자라 문학을 공부했다. 교사 자격증을 따고 여러 학교와 기관에서 교육에 관련된 일을 해왔다. 그런데 글을 읽어보면 매우 파격적이다. 숨기고 싶은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적나라하게 기술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 으로 글을 쓴 그다. ‘사건’이나 ‘세월’ ‘단순한 열정’ 등 에르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은 적이 있다. 창작에 대한 열의가 타오르던 때였다. 칼날 같은 예리함으로 기억의 뿌리를 헤집는 에르노의 글을 읽으며, 사실에 대해 얼마나 엄정한 철학을 갖고 있기에 이토록 냉정하게 글을 쓰는 걸까, 작가가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와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흔히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의 이야기로 간주된다. 그래서 사실과 거리가 먼 형식으로 여겨진다. 얼토당토않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두고 ‘소설 쓰고 있네!’ 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통념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큰 오해다. 문학 언어는 실은 이 세계의 현실에 가장 밀착된 언어 형식이다. 에르노 의 경우 계급과 성별에 따른 억압과 차별을 담은 작품을 주로 썼는데, 낙태 등 예민한 문제들을 과감하게 드러내었기에 독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젠더 차별, 가부장제의 폭력, 육체, 병, 계급주의 등을 냉정하게 파헤치는 글을 써 온 작가는, 자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의 책무를 이어나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이야기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실을 다루는 글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실의 세계는 평평한 듯 보이지만 사실을 다루는 일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기자든 작가든 과학자든 의사든, 사실을 다루는 일에는 세심하고 엄정한 객관성 외에도 선택과 집중, 가치 판단이 따른다. 그러한 선택과 집중, 판단에는 어떤 지향이 있다. 바로 더 나은 세 계를 그려보는 비전이다. 사건 현장을 열심히 누비는 기자의 취재와 기사도 사실을 다루는 글의 힘을 잘 보여준다. 이 세계가 어떤 상황인지를 정확히 보는 일은 더 나은 세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그 점에서 신문 기자의 일이나 작가의 일이나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의사의 일이나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나노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일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사실에 기반을 두고 엄격 하게 현실을 판단하는 동시에 미래를 그려보는 것. 지금 현실의 여러 문제들, 불균등한 세계의 현상을 응시하면서 다른 현실을 그려보는 힘.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탄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의 뒤를 이어 노벨문 학상을 받음으로써 여성으로서는 17번째의 수상이 되었다. 1901년 시작하여 지금 까지 117명의 수상자를 낸 노벨문학상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여성에게 할당된 17명 의 의미를 조용히 생각해본다. 가끔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얼굴을 보며 30년 뒤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곤 한다. 이들의 꿈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영글고 있을지, 사실을 다루는 글의 힘을 믿는 이들이 이 세계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용기 있게 글쓰기를 계속한다면 이 세계가 조금 더 좋아질지... 질문은 계 속 이어진다. 좋은 글은 무엇일까? 문제적인 현실을 두루뭉술하게 버무리며 괜찮으니 걱정마라 하는 것이 좋은 글은 아닐 것이다. 병으로 곪아가는 환부를 슬그머니 덮어 괜찮다고 하는 행위처럼 선의로 포장한 어떤 말은 때로 독이 된다. 그러니 우 리, 칼날 같은 글에 베이기를 두려워 말자. 우리의 둔탁한 시선을 명징하게 밝혀준 다면 그 예리한 날이야말로 새로운 연대로 나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자신의 육체와 감각, 사고를 글쓰기의 질료로 삼은, 그래서 타인의 삶에 녹아드는 보편적인 것이 되기를 꿈꾼 에르노의 날카로운 글처럼.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