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한국계 미국인 작가 민진 리(Min Jin Lee)의 영어 소설『 파친코』 첫 문장이다. 일본 으로 건너간 한인 이민자 가족의 3대에 걸친 서사를 그린 이 소설은 애플에서 드라 마로 만들어 미국의 독립영화 시상식인 고담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미 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극찬했고, 최근에는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을 수상 하여 작가가 한국에 다녀가기도 했다. 2009년에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하면서 민진 리를 초대했는데 섭외 차 연락을 주고받을 때 작가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일본에서 일제 강점기를 다룬 소설을 쓰고 있는데, 독자들이 큰 주목을 하지 않는 일본과 한 국의 역사를 쓰는 일이 무척 고독하고 힘들다고.
그 소설이 2017년 출간되어 뉴욕 타임즈, USA 투데이, 영국 BBC에서 올해의 책으 로 선정되었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2018년에 연구차 미국 보스턴에 갔을 때, 바닷가의 한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평범한 시민이 이 소설을 반겨 이 야기하며 한국 근대사의 아픈 역사에 대해 꼬치꼬치 묻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 소 설이 미국사회에서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 디아스포라의 삶 을 새롭게 비춤으로써 한국에 큰 관심이 없던 보통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힘 을 실감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첫 문장의 의 미를 생각해본다. 역사 안에서 개인은 패배할 수 있다. 역사 안에서 개인은 망가질 수 있다. 평범한 삶을 살던 한 개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기도 하 고, 사회에서 여러 가지 부조리와 피해를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다치고, 상 처를 입고, 패배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과정에서 역사가 개인에게 작 동하는 잔혹극 자체보다는, 역사라는 거대한 개념조차 한 개인이 삶에 맞서는 불굴 의 의지와 투지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가 여러 강연에서, 나라 잃은 설움 많은 시절을 살아왔지만 당당히 이 세계의 한 부분을 차 지하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되풀이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국가와 개인, 역사와 개인의 관계는 이처럼 늘 다소 착잡한 긴장 관계 안에서 사 유된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도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생활의 꿈을 키우지 못하는 나라를 ‘헬(hell) 조선’이라고 하는 것도 그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우리 국민을 잠 못 들게 하는 월드컵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다친 몸으로 최선을 다해 그 라운드를 누비던 선수가 경기 후 인터뷰를 하면서 “이토록 멋진 나라”(this amazing country)를 대표하여 뛸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 말하는 것을 들었다.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이 땅에서 다들 한숨을 내쉰다. 청년 세대에 합당한 미래 의 꿈을 설계하지 못하고 약자를 품고 위하는 정책 대신 권력과 돈의 질서 안에서 많은 것이 결정되는 이 나라에서, 또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이들을 향해 너무나 쉽 게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이 거친 땅은 살기 쉬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나라 든 역경이 있었고, 그 역경을 이겨낸 역사가 있다. 그 역사에는,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개인들이 있다. 그걸 아는 청년이 있다는 것 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힘이고 희망이다.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4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보내는 대학에 대해, 교육기관 으로 대학의 역할과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사회에서 유능한 자리 를 차지하는 것은 단순히 세부적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 공 동선의 가치, 미래 세대와 지금 세대를 잇는 유대, 기후 위기 등 지금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보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길러주는 일, 국가와 역사, 개인과 공 공의 가치를 새롭게 하는 일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 성이자 비전이다. 소설가의 한 문장과 다친 몸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한 선수의 신 비로운 구절 하나를 나누면서, 이번 학기 마지막 학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마무 리하고자 한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낫게 내일을 일구는 일에 헌신하는 우리들. 미국의 저널리스트 스트로홀린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죽임(killing)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홀로코스트는 말(words)로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지면에서 우리가 나눈 말이 죽임보다 상생의 내일을 향하는 이야기가 되 었으리라 믿는다. 이 지면을 빌어, 공공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내주고 헌 신한 우리 기자들에게 경이(驚異)를 표한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